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예쁜 우리 딸
나랑 반대로 긍정적인 아빠 성격 닮아서 내가 더 좋아하는 우리집 둘째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나를 쏙 빼닮은 면들이 있는데, 그건 주로 내가 싫어하는 내 단점들이다.
누구나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살지만, 나는 그게 유독 심하다.
초등학교때는 매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야했고(혹시나 내가 실수 할까봐 미리 걱정되어서)
어디 장거리로 가야할 일이 생기면 늘 화장실 걱정으로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
어렸을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던 적도 있다.
남들보다 예민했고, 더 많이 긴장했고, 소심했던 미취학시절의 내 기분이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이젠 수업시간처럼 내 의지로 화장실을 못가는 시간이 없이 자유가 허락된 직장인이지만, 가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시간이나 공간에 놓여지면, 여지없이 긴장을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고 싶어한다. 그래도 잘 조절하면서 무리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딸에게도 딱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작년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전화로 알려주셨다.
00이가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고, 선생님이 그만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해줬는데도 지속적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아마도 그 직전에 어린이집에서 옷에 실수로 오줌을 싼 일이 아주 창피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부끄럽고 소심한 성격에 친구들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싶다.
괜찮다고 엄마도 초등학교1학년때 그런 적 있다고(나에게도 그일이 엄청 충격적이였나보다. 그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괜찮다고 얘기해 줘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가족끼리 멀리 갈때도 차를 타고 2시간 이상씩 잘만 갔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화장실 걱정을 몇번 하면서 나랑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엄마, 나 학교갈 때 집에서 싸고 학교가서 수업전에 화장실 갔다오면 되겠지?"
"응 그렇지 집에서 쉬하고 가면, 1교시 끝낼때까지 충분히 참을 수 있고, 1학년은 언제든지 손들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얘기해도 되니까 걱정하지마"
코로나로 등교가 미뤄지다가 결국 주1회만 실제로 등교하는 걸로 바뀌어서 1학기는 학교 화장실 고민은
크게 없이 지나갔다.
어제는 내가 반가를 내고 집에 와서 딸을 데리고 은행에 볼일을 보러 갔다.
낮 시간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모르고 가서 1시간이 넘게 기다리는데, 그 사이 딸은 화장실을 2번이나
다녀왔다. 그러고도 내 순서가 오지 않아 혼자만 피아노 학원을 보냈는데, 곧 울면서 전화가 왔다(피아노쌤 전화로).
"엄마 나 속이 안좋아"
곧 내 순서가 다가 오고 있었고, 이미 은행 셔터가 내려져서 다시 은행으로 오라고 할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진정시키고 피아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곧 데리러 간다고 하고 30분을 더 기다려 은행업무를 보고 피아노학원에 갔다.
딸은 피아노 가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엄마에게 오려고 했는데, 은행문이 닫혀져서 너무 놀랐다고
괜히 무서워서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어쩔 수 없이 피아노에 가긴 했는데, 그때부터 속이 안좋았고 피아노 선생님께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고.
당시에 나는 은행대기번호가 줄듯말듯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나 매우 짜증이 난 상태라 딸의 마음을 제대로 헤어리지 못했는데
저녁에 딸과 자기전에 대화를 나누면서 딸이 너무 나를 닮아서 속상하고 짠했다.
첫째인 아들에 비해 눈치가 빠르고 똘똘하고 나름 고집도 세니까. 사회생활은 무리없이 잘 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기대일뿐이였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주위의 모든 시선을 더 예민하게 느끼는 아이라는걸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집은 맞벌이 가정이니까 '너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신호'를 아이들에게 자주 보냈던 것 같다.
"너는 혼자서 학원에 갈 수 있어!" "너는 혼자서 집에서 기다릴 수 있어!"
딸 : "피아노에서 혼자 집에 가는 애는 나밖에 없어! 다들 누가 데릴러 와서 같이 가"
"태권도 끝나면 태권도 차타고 집에 혼자 오기 싫어"
"다들 태권도 차 앞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데 나만 혼자야"
(태권도로 데리러 가면)"엄마 조금만 더 빨리 오면 안돼? 내가 맨날 제일 늦게가"
"00엄마랑 00엄마는 회사 안가는데 엄마는 왜 가?"
나 : "피아노에서 바로 태권도 가는데 피아노 지하1층이고 태권도2층이니까 계단으로 금방 갈수 있지않을까?'
"엄마나 아빠가 피아노에서 태권도 데려다주려고 거기에 갈 수는 없지"
"00이가 씩씩하게 혼자 가니까 엄마 아빠가 얼마나 좋은 지 몰라"
사실 그동안 이런 질문에 큰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내심 네가 조금만 커봐라 일하는 엄마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일해서 너에게 더 큰 경제적 자유가 오게 될건데, 지금 그런 투정은 사치다.
이런 생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워킹맘의 죄책감 따위는 크게 가져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딸과 대화를 하고 딸의 예민함과 긴장감을 곱씹어 볼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당연히 직장을 포기할리는 없지만, 앞으로 한3년쯤 딸의 감정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냥 지나쳐버린 딸이 느낀 외로움이 차곡차고 쌓여서 나중에 내가 큰 이자를 치루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밀려왔으나 딱 걱정을 멈추었고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더욱 잠자기 전에 대화에 신경을 쓰고
저녁시간을 모두 온전한 관심과 사랑
인정과 지지로 채우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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