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상담서비스 이용자였고, 작년엔 아들의 심리검사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우리 딸이나 남편에게도 이게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민함과 불안이 높은 사람이고 그 추진력으로 많은 걸 통제하면서(나를 몰아붙이면서) 살아오다가, 아 이젠 좀 충분한 느낌이야. 라고 자각한 순간에 심리적으로 한방에 무너졌던 경험이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몇 년 전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코로나만 아니면 계속 해보고 싶다.
나의 선천적인 기질을 쏙 빼 닮은 건 우리 집 첫째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째 아이가 나처럼 힘들어 할까봐 미리 걱정했고, 심리검사를 해서 좋은 도움을 얻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여전히 나랑 투닥거리면서도 금새 또 잘 지내는 쿨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우리 아들이 나를 안 닮은 건 엄청난 공격성이다. 감히 부모에게 반항 따윈 해본 나와는 다르게 우리 아들은 자기 보호에 뛰어나다. 조금의 부당함을 참지 않는다(반박하면서 따지고 들면 할말이 없지만, 말로는 날 이길 수 없긴 함). 공격성을 가진 아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아들의 선명한 장점이라고 믿게 되었다.
작년에 딸의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딸이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크게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피아노 학원에서 자꾸 속이 안좋다고 하는 신체적 이상을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괜한 불안감이 나에게 몰려왔고, 아무래도 딸아이도 심리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심과 함께 바로 신청을 했다. 아들과 나는 사설센터에서 유료검사를 받았지만, 요즘은 회사에서도 지원을 해주고 있어서 더 쉽고 편하게 받아 볼 수 있었다. 센터에서는 아동전문 심리검사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개괄적인 아동기질검사, 부모양육태도, 아동행동평가 정도의 검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해주셔서 진행하기로 했다.
검사지를 받아서 질문에 답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정도 질문으로 뭐가 나올까?”
“질문만 읽어봐도, 결국 다 부모가 문제구나!”
“아!! 이거 솔직히 응답하면 나 이상한 엄마라고, 내 양육태도가 문제라고 나오겠구만!”
그래서 아이 기질부분은 내가 느낀 대로 솔직하게 체크하고 부모양육태도에 대한 질문은 다소 부드럽게 해석해서 체크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매우 사실적으로 나와서 심리상담이 사회과학분야가 맞군! 싶었다.
결과에 대해서는 대면상담을 예약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대면이 어려워져서 결과지는 이메일로 미리 받았고 유선으로 결과해석과 상담을 받았다.
결과지를 먼저 받고서 나는 너무 놀랐다.
딸 아이의 결과지인데, 어머 이건 딱 나네!! 얘가 나를 닮았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지금껏 난 딸이 매우 긍정적이고 밝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고 다 아빠 닮았다고
아빠 닮아서 정말 좋아!! 하면서 나랑 반대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딸을 더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다.
1. 아동 행동평가
불안도가 또래 평균보다 살짝 높은 편, 이런 친구들은 걱정이 지나치게 많고 스스로를 심하게 통제할 가능성이 있어 강박적인 행동을 함,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성숙하고 정서조절 능력이 부족, 그래서 신체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배 아픔, 화장실). 어른을 자주 의지하려고 하고 관심을 요구함(잘 운다. 징징댄다) 그 외 사회성이나 학업수행은 정상 범주
2. 아동 기질검사
5가지 기질의 정도(100점 만점)를 검사하는 것인데, 모든 기질이 모두 약간 강함으로 나타났다.
접근(72점), 철회(94점), 조절(63점), 감수성(63점), 개방성(78점)
용어가 좀 낮설었지만, 철회가 월등히 높고, 그것과 상반되는 기질인 개방성과, 접근이 높게 나왔다. 철회는 외부의 위험에 민감한 기질로, 부정적 자극, 수줍음, 두려운, 슬픔, 과민함으로 나눠지는데, 딱 이름만 봐도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에 대한 설명 같았고, 어렸을 때 나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상반되는 기질의 점수가 높다 보니, 강한 자극과 긍적적인 정서를 추구하고 싶은 욕구와 상충이 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자꾸 주저하게 되고 그런데도 또 하고 싶고 스스로에 대해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하게 되는 상황, 그래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 진다고..
상담자 선생님이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는 상황에 비유해서 설명해 주셨다. 들으면서 아 정말 이거 딱 나 잖아. 하고 싶은게 많으면서도 나 스스로 잘 할 수 있을까 자문하고 괴롭히다가 포기하고, 그리고 또 하고 싶어서 갈팡질팡 혼자 마음 속 전쟁중인 나의 모습이다.
상담을 하면서 나도 어렸을 때 화장실 문제로 힘들었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럴 때 내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우리 부모님은 매우 걱정하시면서 나를 병원에 데려가셨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하셨지만, 병원에서는 뭐 문제없다고 했고 그냥 좀 예민한 아이라고 말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보셔서 한번도 생각 해보지 않았던 7살의 내 마음을 기억해 보았다.
‘나 이상한 애인가?’
‘다른 애들은 화장실 자주 안가는데 왜 나만 이러지?’
‘이상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불편해’
‘조금 두렵고 겁이 나, 세상이 편하지가 않아’
7살 때 외할머니를 따라 1시간 시외버스를 타고 외삼촌네 집에 갔다가 엄마와 떨어져서 몇일 지내다가 다시 집에 돌아 오던 기억도 떠올랐다. 버스를 타기 전에 할머니가 캔음료수를 사주셨는데(아마도 오랜지봉봉이나 쌕쌕이였던 듯) 이걸 먹으면 버스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 질까봐 절대로 먹지 않고 버텼다. 먹고 싶었지만, 버스에서 화장실 가고 싶은 상황을 만들면 안된다는 걱정이 너무 컸다. 버스에 내려서는 그걸 당장 먹겠다고 어서 뜯어 달라고 했다가 할머니한테 혼났다. 집에 가져가면 동생들과 나눠먹어야 될 것 같아서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다 먹어버릴 생각이였는데, 할머니가 내 속마음을 눈치 챈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7살 만6세였던 저 어린 내가 너무 짠해서 얘기하다가 눈물이 났다. 동시에 딸 아이가 얼마나 불편했을지 이해가 되었는데, 그 불편한 마음을 대해주던 나의 태도가 우리 부모님의 반응과 똑같아서 더 놀라웠다. 딸이 화장실을 자주 가는 버릇이 있으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병원부터 데려갔던 우리 부모님과 불안한 마음이 들어 바로 심리검사 받은 나.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걱정과 불안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나 뭔가 잘못됐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불편한 감정상태였던 나와 나의 딸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나는 이게 기질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임을 알고 있고, 우리 부모님보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많다는 사실이다.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의 감정까지 보살펴 줄 수 없었던 그 시절 부모들과 다르다. 그리고 내가 도망가지 말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많은 것을 글로 배워서 머리로만 알고 실천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를 바꾸는 건 나 밖에 할 수 없는 거니까.
3. 부모 양육 태도
이건 나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고 생각했는데도 내 문제점이 그대로 나왔다.
상담이 필요한 건 역시 나였어. 아이들은 문제가 없구나. 그걸 대하는 나의 방식이 문제였다.
격려(29점), 강압(79점), 거부(82점)
칭찬은 박하게 하고 독재자처럼 밀어붙이고, 너그럽게 품어줘야 할땐 도망치고 ㅜㅜ
그림만 봐도 너무 확연한 양육태도의 문제가 들어났다. 작년에도 상담자선생님이 내가 너무 엄격하고 유머 없는 엄마라고 했고 그럼 아들의 사고가 경직되고 위축된다고 했는데, 그 문제가 또 드러났다. 너그럽고 자상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늘 머리로만 되고 자연스런 모성애가 없어서 자책하게 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결과지 마지막에 총평을 보는데 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실하게 엄마역할은 잘하지만", 이 부분에서 의식주만 해결해주고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 하는 나를 반성했다.
4. 앞으로 해야 할 양육 방식
- 스스로 한다고 할 때 믿고 기다려주기, 나를 딸에게 대입해서 동일시 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
- 불안하거나 긴장할딴 감정을 언어화해서 읽어주기
- 창피하거나 수줍어서 경험을 포기하려고 할 때 부드럽게 push 해주기
무엇 보다 젤 중요한 건 아이가 언제 행복한지 언제 웃는지, 언제 불안해 하는지, 언제 화를 내는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한다고...
나도 나를 모르는 미숙한 어른인데, 내가 딱 우리 첫째 아이 나이쯤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육아가 즐겁고 아이들이 성장하는게 내 행복이어서 삶의 만족감이 높아지는 그런 날이 올 때 까지.
아, 그런데 그런 날은 안 올 거 같지만, 최소한 10년 후에 지금을 회상하면서,
아 그때 더 잘해 줄걸!! 이런 후회는 하지 않도록.
'아이 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ve you forever (0) | 2020.10.07 |
---|---|
코로나시대의 육아 (1) | 2020.09.22 |
예민한 아이 마음 돌봐주기 (1) | 2020.08.08 |
10살 아이 가르치기 (0) | 2019.09.24 |
벌칙수행 (0) | 201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