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초등 1학년 때, 초등 입학 기념 휴직 중이었던 나는 자주 공부와 숙제를 봐주다가
내가 감정조절을 못하고 여러번 폭발을 했었다. 너무 화가 났고 이 정도도 못하면 아이 인생 끝났다 싶게 좌절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늘 지나고 나서 후회했고, 감정조절하려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나 스스로도 '아들이 못할 수도 있지', '어렵겠다' 이런 공감의 표현이 부족했던 것 인정한다.
그런데, 아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은, 아들의 자세랄까 태도에 대한 것이다.
배우려고 하는 자세, 엄마의 설명이나 말을 귀기울여 보는 노력 이런 것들인데,
이것이 나의 너무나도 큰 바람이라는 것을 이젠 인정해야겠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정말 너무 어렵다.
예전에 내가 10살쯤에 우리 엄마가 내 성적이 너무 집착을 해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는 시험 전날이면 초등학교 저학년짜리를 데리고 새벽까지 산수 문제를 풀게 했다.
나는 그때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아무런 저항 없이 때리면 맞고, 훌쩍이면서 정말 혹독하게 공부했던 나쁜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는 엄마의 기대보다 한참 부족한 지능이었던 것 같다. 난 오로지 그 순간만을 끝내고
일분이라도 빨리 잠이나 자게 되길 바랐다. 그럴때 우리 엄마는 "너는 이것도 모르는데 지금 잠이 오냐"며 날 타박했다.
날 공부 잘 하는 똑똑한 딸로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지금은 나도 이해가 간다.
또 한편으로 그때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열등함을 뼈저리게 자책했던 초등학생 나도 짠하고 불쌍하다.
공부하기 싫었던 그 때 내 마음으로 우리 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은 공부하기 싫은 걸 넘어서 모든 걸 거부하는 것으로 일관해서 날 힘들게 했다.
오늘 저녁의 상황은 이랬다.
나 : 00아 엄마는 설거지를 할게, 너는 수학문제집 한쪽만 푸는 거 어때?
아들 : 응 알았어~
시원하게 대답은 했으나 문제를 풀기 시작하자 마자 아들은 짜증을 내며,, 모르는 문제니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문제를 봐주러 갔다.
(아들의 숙제나 공부를 봐주기 전에, 또 화를 내게 될까 봐 난 미리 긴장하게 되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아들의 태도(삐딱한 자세, 짜증스런 얼굴, 정신없는 책상 등)를 보자마자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걸 꾹꾹 누르고, 감정을 배제하고 아들이 모른다고 한 부분을 살펴보고 알려주었다.
초등 3학년 2학기 수학 문제집의 단원제목이 '몇십몇 곱하기 몇십'으로 12*20= 이것을 구하는 개념 설명 부분이었다.
2일 전에도 내가 최대한 천사 같은 목소리로 설명해준 부분인데, 아들은 일단 몇십몇이란게 뭔지를 모르고 있어
이런 개념설명(책 읽기 같은 느낌 나는)을 혐오했다. 내가 아무리 천천히 이해시키려고 해도 엄마는 어렵게 가르친다며
소리치며 날 원망했다. "엄마가 이상하게 가르치잖아" "난 이거 모른다고 몰라!" "왜 글자를 자꾸 읽으라고 해? 숫자로 계산하는 걸 알려줘야지" "엄마의 태도도 불량해"(이건 내가 아들의 태도를 불량하다고 지적해서 나에게 역공격 한말)
불과 몇 시간 전 상황을 되돌아보는 이 시점에 와보니 우리 아들이 정말 학교 다니기 힘들겠다 싶어 슬프고 우울해진다.
내가 10살 무렵의 가졌던 엄마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 아들에게도 심어서 내 말에 거역 못하는 아들로 키우고 싶진 않지만,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반항하고 보는 아들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났다.
차분하게 말로 설명해서 10살짜리 아들을 내가 못 이길리가 없지만, 오늘 아들과 말다툼을 하면서 분노가 치밀면서도
묘한 쾌감 같은 것이 들기도 했다. '어라 얘 봐라, 나랑 다르네?!', '난 이쯤 하면 고분고분 내 말 들을 줄 알았지?',
'넌 날 닮은 듯하면서도 나보다 낫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결국 내가 설명을 어렵게 한 것으로 인정하고 아들에게 항복했다. 수학 문제집은 접어 버렸다.
오빠 혼나는 거(실제로는 오빠가 엄마에게 폭언하는 장면) 옆에서 눈치 보며 지켜보던 딸을 얼른 씻기고
혼자서도 잘 씻는 아들은 혼자 씻게 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책 2권을 신나게 연기하면서 읽어주었다.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고 눈물이 났지만, 마침 책이 슬픈 장면이라 연기력으로 위장할 수 있었음)
아들과 딸이 내가 해준 즐거운 책 읽기로 즐거운 기억만 남긴 채 잠들었기를 바라며
오늘 아들의 격한 표현들, 나에 대한 반항과 분노에 휘말리지 않고(속으로 엄청난 불덩이를 느꼈지만)
감정적인 대응을 참았던 내가 정말 대견하다.
평생 나 밖에 모르고 내가 제일 중요하던 내가 이제 정말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싶었다.
아이들이 나를 키운다는 말 정말 맞는 말인데, "아들아 엄마 이 정도 어른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거니?"
아직 집에 안들어온 남편에게 오늘의 상황을 말했더니(평소 아들의 수학 가정교사)
"걔 원래 오래걸려, 힘 빼지 말고 그냥 냅둬, 내일 내가 할게" 라는 답이 왔다.
그래 공부 가르치기 난 포기다. 아들아 엄마는 정말이지 너가 걱정돼서 그런건데, 나중에 커서 나 원망하기 없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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