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세계명작 전집 함께 읽기(읽어주기).
배타고 떠나는 줄거리가 나오는 책들을 골라 읽다보니
11월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게 되었다.
작년에 오랜만에 책 '달의 궁전'을 펼쳤다가 책 초반에 주인공 마르코 포그의 이름에 관한 사연을 읽는데
거기에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의 이름도 포그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한 줄 때문에 80일간 어떻게 세계를 여행하는 건지가 너무 궁금해서 바로 완역본을 읽었는데,
'이게 무슨 세계 일주야?' 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일주가 맞았다. 나는 세계 일주를 세계 여행일 거라고 착각 했을뿐.
나는 초등학교때 TV만화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세계일주에서 열기구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책의 줄거리를 제대로 모른 채 혼자 상상하기로는 터키 카파도키아쯤도 지나가는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영국신사에 대한 반감, 제국주의적 세계관 또 저 시절 우리나라의 형편이 생각나서
괜히 화도 났지만, 저절로 세계지도를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에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 쥘 베른은 태어난 곳에서 멀리 여행을 떠나본적도 없는데 이런 소설을 썼다니 놀랍다.
또 약 150년전에도 세계는 이미 정보와 문화 교류가 활발했었군 싶기도 했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이여서 아이들에 읽어주기가 한결 수월했다.
우리 아들은 포그가 세계일주를 마치려고 너무 쉽게 돈을 쓰는데에 깜놀했다.
돈의 액수가 나올때 마다 그게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100년전 물가로 따졌을 때 어마어마한 돈이라고 밖엔 설명이 쉽지 않아서
그냥 아들이 납득할 정도의 큰 돈으로 둘러댔다.
아들이 돈 액수에 너무 민감하다는걸 새롭게 깨달았다.
<아들이 경악한 포그의 현질>
1. 인도 대륙 이동 수단으로 코끼리를 2천파운드 주고 사서 나중엔 통크게 기부하고 떠날 때 (아! 그 비싼걸 그냥 주냐?)
2. 캘커타에서 하인이 구속되었을 때 보석금 통 크게 2천 파운드 낼 때(와! 진짜 하인 인성!)
3. 뉴욕에서 리버풀까지 배 삯으로 8천 달러에 딜 할 때(이렇게 돈 다 써서 2만파운드 받음 뭐하냐?)
4. 세계일주로 얻은 돈을 형사 픽스에게도 나눠 줄 때(나쁜 픽스에게 왜 돈을 주냐며)
읽어주면서 지도를 같이 보며 세계지리도 간접체험시켜주고 싶은 내 욕망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그냥 내가 재밌어서 그날그날 같이 읽은 부분별로 지도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는데
나랑 남편만 재밌어했고 아이들은 그냥저냥, 다 읽고서는 소요시간을 지도에 표시해 볼 꿈도 꿨지만
내 기대 수준에 아이들이 미치지 못하면 또 괜히 화가 날테니... 마음 접고 그냥 책을 열심히 재밌게 읽어주었다.
책에 낙서하면 절대 안될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마음 편히 가지고 놀고 있다.
포그의 세계일주 루트를 따라서 그대로 지도에 표시하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이집트>인도>중국>일본>미국>영국
이렇게 정확하게 지구 한바퀴 돌아서 계획된 시간에서 하루가 단축되는 마법(?),
덕분에 포기가 내기에서 이기게 된다.
동쪽을 향해서 간다는 것은 태양을 향해 가는 것이므로 포그가 경도를 넘을 때마다 4분씩 하루가 짧아졌다. 지구의 주위는 360동이므로 4분을 360배 하면 꼭 24시간이 된다. 그렇게 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포그는 하루를 벌었던 것이었다. 만약 서쪽을 향해 일주를 했다면 반대로 하루를 손해 보았을 것이다. <P.202>
지구는 둥글고 동쪽으로여행하면 시간이 시간을 거스르고 서쪽으로 여행하면 시간을 뒤로 돌리는 개념을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내 기대만큼 이해 한건지 알수 없었다.
난 아이들이 인도에서 화형 당할 뻔한 여인을 구출하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아이들은 그 장면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은 내내 통크게 현질하는 포그를 걱정했고 픽스를 미워했을뿐
마지막에도 픽스때문에 내기에서 진줄 알았을때 픽스를 증오했다.
사실 아들은 더 원론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도대체 저런 내기를 왜해?" "나라면 그냥 집에 있으면서 자기돈이나 쓰겠네!"
어쩜 이리 날 닮은 것인가. 무조건 안전추구형 집순이 내게도 세계일주 내기는 꿈에도 생각 안해본 거다.
난 모험심 창의성 바닥이지만 우리 아들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길 늘 바라건만, 다 내 욕심이지 싶었다.
읽어주며 아들의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냉탕온탕 왔다 갔다 했다.
아! 그냥 이런 삶도 있는 거잖아? 응? 난 너에게 이거 왜 읽어주는거냐 그럼? 하고 화를 내고 싶었다.
물론 실제로 화내지 않았다. 아들이 타고나 성격(나를 똑닮은)을 수용해주기로, 그리고 안전추구형 나도
수용하기로, 우리는 책이나 영상으로 하는 여행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니까.
옆에서 책을 듣던 남편은(사주에 역마살 일도 없지만 늘 여행을 꿈꾸는)
포그를 너무 부러워했고, 남편이랑 성향이 비슷한 딸도 여행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여튼 딸은 배타고 기차타고 코끼리타고 썰매타고 계속 계속 이동하는 줄거리 자체를 좋아했다.
딸에게 다시 한번 책을 읽은 소감을 물었더니..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난 광대가 되기 싫어"
딸은 하인 파스파르투가 돈이 없어서 서커스단의 광대가 된 게 충격적이였나 보다.
그러더니 자기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이런 조건을 건 여행 "체험학습 써서 학교 빠지고 가는 여행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지도를 펼치고 싶게 만드는 책.
적당한 긴장감과 반전의 재미를 주는 책으로 초등학생에게 딱 읽어주기 좋았다.
'아이 키우기 > 읽어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에 함께 읽은 책(바스커빌가의 개, 자전거 도둑) (0) | 2022.03.19 |
---|---|
동물농장_조지오웰(12월 함께 읽은 책) (0) | 2021.12.22 |
10월, 함께 읽은 책 (0) | 2021.11.10 |
9월에 함께 읽은 책 (0) | 2021.10.09 |
8월 함께 읽은 책 (0) | 2021.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