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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읽어주기

9월에 함께 읽은 책

로빈슨 크루소

물려받은 지경사 세계명작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더불어 제목만 아는 유명한 책의 줄거리를 어린이버전으로 쉽게 읽으며
나도 나름의 독서와 낭독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9월에는 아이들에게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줬다.
추석도 있고 휴가도 다녀오고 백신 후유증으로 골골대느라 이번 달엔 한권만 함께 읽었다.

 

 


총 100권이나 되는 전집이지만, 우리 집 초5, 초2에게 적합한 내용을 고르려고 하면 고민이 조금 된다.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 15소년 표류기, 삼총사 이런 책들을 어릴 적 나는 안 좋아했다.
이유는 여자가 주인공이 아니여서였다.
(그 어린 시절 나는 왜 그렇게 여자인 내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는지)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땐 일부러 이런 책을 고른다.
지금에서야 모험이 가득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내가 어릴 적 간과했던 다른 세상을 대리 체험하고 있다.

어른의 관점에서 본 이 책은 300년전 영국인의 세계인식을 체험하게 해줬달까?
섬나라인 영국에서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것은 필연이구나 싶었고,
틈틈히 제국주의 관점이 녹아있다고도 생각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아주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인도에서 28년만에 탈출하는 얘기 인 줄은 몰랐다.
선원이 되어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꿈을 가진 로빈슨.
(일단 이 대목에서 전혀 감정이입이 안되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진취적인 마인드로 자라나길 바라기도 했다.)
첫 번째 항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는 배를 안 타야지 결심해 놓고
또 바다로 나가고 포로가 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
그리고 브라질에 정착하나 싶었는데, 다시 또 바다로 나갔다가 조난되어 무인도에서 혼자 20년 넘게 살다가.
우연히 프라이데이를 구출, 그리고 28년만에 무인도 탈출하게 되는 이야기

과연 로빈슨이 탈출 할 수 있을지 결말을 모르는 상태여서
아들은 내가 읽어주는 속도를 못 견디고 혼자 다 읽어버렸고 나중에 내가 읽어주는 것을 또 들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뒷 부분 스포를 했지만, 결말을 알고 봐도 두 아이 모두 재밌게 들어주었다.
여주인공 나오는 표지만 골라오는 딸에게도 이 얘기가 무척 재밌었나보다.
(물론 다음 책으로 골라온게 표지에 예쁜 여자 그림이 있는 '춘희'여서.. 내가 다시 꽂아 놓고 왔다.)

우리 가족에게 이 책은 프라이데이를 구조하기 전과 후로 나눠진다.
책의 전체 분량으로 보면 많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우리 가족에겐 로빈슨 크루소보다 프라이데이가 더 기억에 남았을 것 같다.

프라이데이의 이름은 로빈슨이 금요일에 구조해줬기 때문에 프라이데이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요일의 영어단어 복습도 했다.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프라이데이만 나오면 자동으로 먼데이부터 노래 시작
영어를 못하는 무어인 프라이데이에게 로빈슨이 영어를 가르쳐준 거라서
특별히 프라이데이가 말할 때 외국인처럼 웃기게 읽어줬더니 아이들이 정말 웃겨했다.
(난 스스로 '아 나 너무 웃기고 재능있네' 했고, 아마 아이들은 좀 당황스러웠을 듯,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였어?')

책을 한달 동안 긴 호흡으로 읽어줘서 애들이 줄거리를 하나도 기억 못 하겠다 싶었다.
근데 정작 기억 못하는 건 나뿐이였다.
이 전집의 부제가 논술대비 초등 학생을 위한 세계명작이라
뒷 부분엔 수능언어영역 같은 문제가 부록으로 있다.

 


이걸 풀어보려는 건 절대 아니였는데, 애들이 퀴즈에 너무 열광을 해서
같이 풀어보는데, 나는 기억 안나는 세세한 줄거리를 아이들은 다 기억하고 찰떡 같이 맞춰서
깜짝 놀랐다.
자신이 그 문제를 맞췄을 때 엄청나게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너희 지금 행복하구나!' 문제 맞춘게 그렇게 좋은 건가?
엄마는 기억 못하는 걸 나는 기억했고 엄마를 뛰어넘어서?
아이들 수준에 맞는 학습이란 이럴 건가?
자존감은 이렇게 쌓는 건가?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내가 지금 책을 읽어주는 건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없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오로지 아이들의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바람이 있다면, 나중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때
어느 날 문득 로빈슨 크루소를 만나게 되면
엄마의 웃긴 프라이데이 목소리를 기억해 주고 '그때 우리 엄마가 읽어 준 책 너무 재밌었지!' 해 주길

그리고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이야기가 주는 힘을 기억해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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