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서 기록
나에게는 무언가를 읽는게 밥먹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특히 우울할때도 책, 심심할때도 책
2020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내가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시간은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시간이라서,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면서, 독서 시간은 줄었다.
매일 출근이 얼마나 나를 규칙적으로 살게 해주는 원칙인지 깨달았다.
최근 10년 간의 독서 습관을 돌아보았다.
독서에 집착해서 몇 년전까지는 새해마다 일년에 백권 읽기 같은 목표를 정해두고 열심히 읽었다.
또 블로그에(비공개로) 내 노트에 독서록도 남기고 밑줄 그은 문장을 정리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읽기를 다짐하기도 했는데,
한권의 책을 읽으면 그 안에서 또 추천되는 책들이 많다보니까
작가가 말하는 그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하고 욕심이 나서 동시에 여러권을 읽는 일이 많았다.
특히 전자책 덕분에 당장 궁금한 책은 즉시 결제해서 볼 수가 있어서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이 넘쳐나는 것에 흥분이 되면서도 압박감으로 느끼기도 했다.
2020년에 내 목표는 책 천천히 읽기였지만, 여전히 큰 맥락 없이 이책에서 저책으로 정신 없이 읽었던 것 같아.
작년에는 독서기록앱으로 읽은 책 제목만 그때그때 기록해뒀고,
중간에 읽다 만 책을 제외하고 완독한 책만 기록해놨는데
앱에서 기록을 보니 총 80권쯤을 읽었다.
물리적으로 내가 읽은 책의 권수를 따져보면서, 욕심이 나서 왜 저것 밖에 못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원서 읽는다고 약 6개월 동안 아침시간을 투자했던, 매직트리하우스를 합치면 100권이 넘네? 하면서,
괜히 우쭐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12월부터 거꾸로 내가 읽었던 책의 표지를 쭉 살펴보면서
내가 언제 어느 계절에 어디에서 책을 읽었는지, 또 어떤 기분이였는지를 추억했다.
그러다가 작년 2월쯤에 심각한 부부싸움을 할 때가 기억났다.
그 시기에 난 지대넓얕 제로편을 읽으면서 메모하는 공책을 책상에 펼쳐놓고 지냈는데
남편이 그걸 가지고 공격을 했다. 이렇게 백날 책을 읽으면 뭐하냐 사람이 이렇게 인성이 못 됐는데!
그래서 싸움은 서로간의 막말 대전으로 번졌었다.
결과적으로 다시 화해했고, 그 싸움은 결혼생활 10년의 전환점이 되어서 더 깊은 동지애 같은게 생겼지만,
나는 내 취미생활에 대해 남편이 그렇게 지적한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책을 백날 읽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인생이라니!
나도 알고 있었던 내 문제였기에 더 아팠고 더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좀 천천히 읽고, 더 많이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나 스스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달라졌고, 조금 철 들었고, 성장했다.
쭉 책 표지를 보다가 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 두권이 누락된 걸 발견했다.
박경리의 말(김연숙), 아침의 피아노(김진영) 두권을 마저 추가하기도 했다.
11월쯤에 우연히 정여울작가님의 책을 연달아 읽었는데,
그 중에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에서 '아침의 피아노' 이 책 언급이 나왔다.
그리고 또 우연히 '박경리의 말'을 읽는데, 여기에도 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가 소개되었다.
이 책들은 다 예스24북클럽에도 있는 책이여서, 바로 아침의 피아노를 읽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의 일기장이였고, 아 이 책 뭐지? 지극히 사적인 거 아닌가 싶었지만, 책이라고 하기엔 좀...
그러나 다 읽고 나서 지금도 내 안에 뭔가가 묵직하게 남은게 느껴진다.
작가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제일 많이 쓴 단어는 '사랑"이였다.(내가 기억하기로)
그리고 나도 그 사랑이 무엇인지 내내 생각해 보게 한 책이다.
정여울 작가님이 위에 책에서도 인용했던 '아침의 피아노'의 그 문장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이걸 요즘도 수시로 되새기고 있다.
불안이 몰려 올 때도 조바심이 날때도, 두려울 때도
"나는 나를 안아준다. 괜찮다. 괜찮다"
2021년에 나는 아무런 새해 계획을 안 세우기로 했다.
거창한 계획없이도 내가 나아가보고 싶은 방향이 있고, 원하는 게 있지만
그것을 하기 위해 매우 세부적인 실행 계획은 안 세우기로, 그것을 세워서 나를 몰아부치지 않기로 했다.
내 독서는 더욱 천천히 하고, 내가 읽지 못한 책에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고
대신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어줄 생각이다.
사실 이건 과도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내가 읽어 주는 책을 열심히 잘 들어주었음 좋겠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내 목소리를 열심히 들어주지 않아도 기분나빠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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