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밌게 읽었던 에세이 3편이 모두 50대 여성작가, 워킹맘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한번에 감상평을 기록하게 되었다. 막상 마흔 살이 되고보니 나는 스무살때나 서른살때랑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라는 걸 알겠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삼십대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면 지금의 사십대는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까 괜히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지금 오십대를 통과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저 나이대는 그렇구나 하고 미리
간접체험하면서, 어른들 말이 다 맞는 말이라고 어른들 말 잘 들어야겠다고 가슴에 새기고 있다.
1.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_이주희
어느날 50대인 회사 지인 분이 카톡으로 책소개 영상을 보내주었는데, 거기에서 이 책의 프롤로그를 들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내가 오십되면 딱 저럴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화들짝 놀란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 문장들은 마흔을 맞은 올해의 내 심정이기도 했다. 책은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기어이 오십이 되었다.
지혜로울 줄 알았다.
탯줄을 끊고 반백 년을 살면 웬만한 시련에도 눈 한번 감아 낼 강인함이 생길 줄 알았다.
…………
………….
그러나 웬걸.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고 삶은 여전히 치열하고
어마나 이건 내 얘기네 하면서 책을 주문했다.
스무살엔 서른살을 까마득하게 생각했고
막상 서른살은 첫째를 키우느라 아무런 감흥없이 지나갔다. 마흔살은 성인이 된 후의 내 20년중
초반 20대 10년은 한살한살이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서른부터의 십년은 한 3년이 1년으로 압축되어 기억될정도로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 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나의 삼십대는 아이들 낳고 키우고 울며불며 직장다니느라 그냥 정신없이 지나간것 같다.
책의 목차를 보며 오십을 마흔으로 바꿔 생각하면서 읽었다. 작가님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새로운 다짐을 나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책 챕터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가 같이 언급되는 서술 방식도 재밌고 좋았다.
쇼파에 기대서 읽느라 밑줄 하나 안긋고 읽었네 싶었는데 <여든과 스물, 그 사이> 챕터에 밑줄을 그어놨더라.
나도 아이가 둘 있지만 여전히 엄마의 자식이여서 내 걱정이 곧 엄마의 걱정이 되는 것에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또한 부모님의 하루하루는 나의 하루하루보다 더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화덕처럼 불타는 자식의 마음은 한 발짝 물러서 찬물 한잔으로 식혀주고 미지근하게 식은 부모님의 몸부터 따뜻한 음식으로 덥혀드리는 것이 옳겠다. 큰일 없이 여든 살의 부모와 스무살의 자식과 오십의 내가 함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임을 안다면 말이다. <P.46>
아 어쩌면 병렬 처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나를 희생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p. 47>
여든 부모는 오십의 자식도 모자라 스무 살 손주의 안녕을 빈다.
“내가 있는데 엄마가 왜 걱정을 해. 딸 걱정이나 해주셔.”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네 걱정이 자식 걱정이니, 그 걱정, 내가 하는 게 맞는 거지."
그래. 여든과 오십, 스물은 이렇게 톱니바퀴 같은 것이구나. 맞물려 있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p.48>
2. 마녀엄마_ 이영미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운동 모임에서 책 마녀체력을 알게되었고 마녀체력을 읽고나서 자연스럽게 마녀엄마를 사게 되었다. 마녀체력을 읽으면서 그 도전이 너무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마녀엄마는 아들이 20살이 넘어서 쓰는 육아일기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임신과 출산, 초등육아의 과정까지 매우 공감했고 아직 내가 겪어보지 않은 아이의 사춘기, 20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막연한 걱정, 두려움보다는 약간의 기대감이 생겼다.
편집자 출신 답게 거의 대부분의 글에서 책 이야기가 같이 언급되는데, 이 점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 목록은 쌓였갔다. 지금 읽고 있는 랩걸(호프 자런)을 읽으면서 나도 이영미작가처럼 “식물에다 자신의 삶을 접목시킨 우아한 전개”에 깊이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고 큰 조언을 얻었다.
앞으로 나도 스스로 행복한 인간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내가 먼저 몸소 실천하면서, 아이들의 영원한 팬으로, 아이들이 크고 나면 부부만 남겨져도 허전하지 않게 잘 살아야지 다짐했다.
밑줄 긋기 타이핑은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임신과 출산 경험을 쓰면서 어이가 없었다. 26년이나 지난 옛일이다. 세상이 두 번 넘게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토록 생생할 수가 있나! 오래 깊이 잠들었던 사람이 눈을 번쩍 뜬것 같았다. 머릿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시퍼런 감자 싹처럼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그만큼 엄마가 된다는 사건은 뼈에 아로새겨진 강렬한 경함인가 보다. <p.35>
그렇지 나도 그렇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였다. 우리 엄마에게도 그런 경험이였겠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많이 읽어주지도 않고 책 읽는 아이가 되기를 기대했던 엄마.
읽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커녕 잠이나 실컷자고 싶어 했던 엄마. 도서관에 데려가지도 않고, 책을 좋아할 거라 믿었던 엄마가 슬프게도 바로 나였다. <91>
나는 늘 아이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들은 내가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것 같다. 나도 아주 가끔 남편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면 엄청나게 질투가 나기도 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저 사람을 내 세계로 다시 데려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역지사지했으니, 아이들 앞에서는 아이들만 바라보는 걸로,,, 다짐하고 살지만, 너무 어렵다.
그렇구나 공부뿐만 아니라 뭐든 꾸준히 잘하려면 체력부터 길러야겠구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4학년에 막 올라간 아이를 학교 수영반에 가입시켰다. 수영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자 싶었다. <p.98>
아마도 이즈음부터일까. 아이가 뭘 하기를 바라지말고, 우선 나나 잘 살고 보자 싶었다. 아이는 수영을 멈췄지만, 엄마는 본격적으로 새벽반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p.100>
이것 때문인지 몰랐는데, 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에게 수영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바로 수영강습 등록을 했는데, 내 무의식에 이 책 내용이 남아 있었나 보다. 나도 같이 수영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잦은 피부트러블을 핑계로 바로 포기했다.
아무리 생계가 어려워도 엄마가 생활력이 강하면 자식을 배 곯리지 않는다. ….질긴 민들레 같고 뜨거운 화톳불 같은 모성의 손길을 받은 아이는, 비뚤어지기가 쉽지 않다.
내 엄마도 질기고 뜨거운 부류에 속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당신 삶쯤은 어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든 가까운 연세에 쉰 넘은 자식을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키 작은 딸을 슈퍼모델 쳐대보듯 늘 예쁘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부끄러워 질색을 하지만 어쩌겠나, 당신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데. 어쩌면 나를 키운 팔 할의 힘은 지치지 않고 샘솟는 엄마의 ‘팬심’이였는지도 모른다. <p.108>
내 엄마의 풍성한 칭찬을 먹고 자랐으면서 내 아이에겐 넉넉히 표현하지 못했다. 외동아들이 자만할까 봐 우려했다.
….....................
누군가에게 감탄과 자신감과 칭찬을 표현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진정한 팬들이나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쓰리 콤보다. 하물며 내가 낳은 자식에게 안 하고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가난한 엄마는 돈을 줄 수 없다. 바쁜 엄마는 시간을 주기 어렵다. 하지만 가난한 엄마도 바쁜 엄마도 얼마든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감탄이요, 칭찬이다. 그것이 엄마라는 존재가 지닌 사소하면서도 강력한 힘이다.
자식에게 베푸는 데 늦은 때란 없다. 요즘 나는 다 큰 아들을 연예인 바라보듯 눈부셔한다. 엄마를 배려해 줄 때마다, 대견하다고 엉덩이를 두드려 준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고생했다고 물개박수를 쳐 준다. 내 엄마처럼, 여든까지 아들의 팬으로 살아 볼 작정이다. <p.111>
내 아이들을 향한 이런 마음 꼭 가져야겠다. 늘 물개박수 장착하기로.
딱 여기까지가 지금 내가 살아온 만큼 공감된 부분이였나보다.
그리고 이후는 사춘기 아이, 성인이 된 아이와 같이 살아가기, 자식이 떠나고 둘만 남겨질 부부얘기 등은
아직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였지만, 충분히 긍정적으로 성인이 된 아이들과의 공생관계를 그려볼 수 있었다.
3. 혼자여서 좋은 직업_ 권남희
새책이 나왔는지도 몰랐는데, 어느날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너무너무 반가워서 바로 주문했다.
내가 받은게 2쇄인거 보니 책이 잘 팔리고 있나 싶어서 괜히 기쁘기도 했다.
작년에 읽은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가 너무너무 재밌었는데 그 분량이 너무 아쉬웠고,
내가 작가님 블로그를 찾아야겠네 했는데, 아직까지 찾질 못했다.
책 프롤로그에서 정세랑 작가의 말을 언급했는데 나도 딱 같은 심정이다.
“역시 선생님 에세이는 너무 재밌습니다. 아쉬운 것은 분량뿐이에요!! 더 자주, 더 길게 써주세요.”
이 책을 사 놓고 아끼고 있다가(난 보통 이런 걸 참는 사람이 아닌데도, 손에 잡으면 순식간에 읽어버릴거니까 아쉬워서)
머리가 너무 아팠던 주말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역시나 웃고 울며 넘넘 재밌게 봤고 그 사이 편두통이 사라졌다. 읽으면서 작가님이 한챕터를 쓰고 계신다는
책 “마감일기”를 알게 되어서 검색해보니 이미 출판되어 있고, 공저자 중에 한분은 또 위의 마녀엄마 작가님도 계셔서
괜히 반가웠다.(구매리스트에 추가됨)
작가님이 바라본 50대는 이러했다고 한다.
“천재요절,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지만, 천재도 미인도 아니어서 신체 건강하게 50대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반이 지나고 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50대는 의외로 편안한 나이였다. 불만이 많았던 10대, 떠돌았던 20대, 고통과 희망이 공존했던 30대, 생존하기 위해 치달린 40대였다면, 50대는 한 박자 쉬어 갈 수 있는 시기였다. 이번 생, 이대로 괜찮은가 자가 점검을 하고, 지난 50년 동안의 경거망동을 회개하며, 남은 50년(?) 삭아가는 관절로나마 또다시 달리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는 시기였다고 할까.<프롤로그에서>
나는 지금 생존하기 위해 달리는 40대의 시작이지만
미리 저 50대의 삶을 보니, 40대를 더 잘 살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인생에 대한 그 어떤 큰 목표나 다짐없이도
그냥 주어진 내 일을 하다 보면 50대쯤엔 지금보다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못하고 잘하는게 없다고 고백하는 작가님이 왜 이리 귀여운지 모르겠다.
고깃집에서 가위질 서툴고 운동 못하는 건 딱 내 얘기인데 늘 뭔가 손이 어설프고 엉성한 나 스스로를
내가 좀 귀여워해도 되겠다 싶었다. 또 나를 똑 닮아서 양말신는것도 매우 어설프고 힘겨워보이는 12살 아들도
이젠 좀 귀엽게 바라봐야겠다.
읽는 내내 부족한 여러 단점에도 딱 한가지 재능인 외국어와 글쓰기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라는게 얼마나 부러웠던지.
전작에서 취준생 딸을 걱정하셨는데, 사랑하는 딸이 취업에 성공했다는 걸 읽어서 나도 얼마나 기뻤는지,
또 반려견 나무가 죽은 사실을 읽으며 나도 얼마나 슬펐던지.
요즘 서점에 에세이가 넘쳐나지만, 이렇게 유쾌하고 울컥하는 에세이는 권남희 작가님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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