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10년전쯤, 2025년까지 회사 다녀야할 이유라는 짤이 있었다. 2025년 추석이 장기간의 황금연휴라는 이유였고 그때까지 회사를 잘 다니면서 버텨보자는 유머였다. 그 당시 나에게 2025년은 너무 까마득한 연도였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소망했듯 나도 저 황금연휴엔 여행을 가야지 하는 다짐을 했었다. 그 2025년 황금연휴를 코 앞에 둔 심정은 씁쓸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이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할 것인가.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남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를 상상으로 돌아다니다가 내가 원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매일 아침 달리기 해보기, 못 읽은 책 읽기 이 두가지를 오전에 하고 오후엔 도심 걷기, 맛있는 밥 먹기. 이 단순한 계획에 난 너무 행복했다. 그리하여 긴 연휴동안 읽은 책은 10년전 읽다가 접어버린 ‘이기적 유전자’ 다.
10년전엔 서문 읽기부터 난관이였다. 저자의 비유를 서문에서부터 이해 못한게 많았다. 이번에 다시 읽을 땐 서문이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최근에 불멸의 유전자를 읽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기본단위라는 것과 생명현상을 개체의 관점이 아닌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결과적으로 살아남은(후대에 전달되는) 유전자는 이기적일 수 있다는 주장인데, 난 아무런 의심없이 바로 설득되어 버렸다. 이미 다른 여러 경로로 이 책의 메시지가 나에게 스며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날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시대에 벌써 50주년이 되어 가는 과학책이 초판의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에 쏟아진 관심중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중 이 책 때문에 삶이 너무 허무해서 괴롭다는 얘기에 공감되지 않았다. 나의 존재 이유가 유전자 운반도구라는 사실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가? (책에서는 우리가 유전자 운반도구 이상이 되었음을 여러번 얘기하고 있음) 현재 우리의 진화는 문화적 밈을 통해 후대에 전승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압도할 지경까지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삶의 의미가 유전자결정론으로 퇴색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유전자 운반도구의 사명을 저버리는 인간의 피임 행위 하나로 다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전이라면 자연선택으로 죽음을 맞이할 개체(그것이 인간이라면 우린 더 크게 이입한다)가 복지국가시스템으로 개체의 최적 후손의 수치도 조절하고 최대한 다 살려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문장정리를 하면서 이기적 유전자 책에 대한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다. ‘책을 읽어드립니다’, ‘알릴레오 북스’, 최재천교수님 영상들을 보고나서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종이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전자책으로도 아무때나 대출 할 수 있지만, 이 책만은 꼭 소장하고 한두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종이책도 주문했다.
책 제목만 보고 인간본성의 이기성에 대한 얘기로 착각할 뻔 했는데, 책을 읽음으로서 이기적인 유전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읽기 바빠서 많이 못했지만, 일부 추려놓은 밑줄긋기 정리해본다.
<21>
우리의 뇌는 이기적 유전자에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정도로까지 진화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피임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유전자, 자연선택의 기본단위
<66>
…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는 나의 신념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97>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의 제목은 “이기적 시스트론” 도 “이기적 염색체도” 아닌, “약간 이기적은 염색체의 큰 도막과 더 이기적인 염색체의 작은 토막”이라고 붙여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매력적인 제목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유전자를 여러 세대에 걸쳐 존속할 가능성이 있는 염색체의 작은 토막이라 정의하고 이 책의 제목을 “이기적 유전자”라고 한 것이다.
<115>
성과 염색체 교차는 현대판 스프의 유동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과 교차로 인해 유전자 풀은 유동적이며 유전자는 부분적으로 뒤섞인다.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그 수가 늘어나고 또 어떤 유전자는 수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237>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377>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378>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414>
사실 실생활의 많은 측면은 비영합게임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 종종 ‘물주’ 역할을 하고 개개인은 서로의 성공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경쟁자를 누를 필요는 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기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우리는 서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세계에서조차 협력과 상호 부조가 어떻게 번성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464>
그러나 개체선택이냐 유전자선택이나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유전자와 생물 개체는 서로 다른 상호 보완적인 역할, 즉 자기복제자와 운반자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종의 기원_찰스 다윈 (1) | 2025.11.08 |
|---|---|
| 불멸의 유전자_리처드 도킨스 (0) | 2025.09.29 |
|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4) | 2025.08.30 |
| 깊은 슬픔_신경숙 (1) | 2025.08.20 |
| 조개줍는 아이들_로자문드 필처 (10) | 2025.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