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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리틀 라이프



서점에서 매대에 진열된 이 책을 볼 때마다 책표지의 사진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초반에 좀 지루했으나(4명 인물 구분이 잘 안되어서)오랜만에 밤잠 미뤄가며 읽은 소설이라 감상평을 남겨보고 싶다.

책에 대한 정보 없이 읽었다. 초반에는 남자 4인방의 우정이야기인가 싶었다(시트콤 프렌즈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 4명의 인물 중 주드와 윌럼이 주인공임을 인식하고 부터는 두 사람의 성장 이야기라고 믿고 읽었다. 관계맺기에 서투른 회피유형 주드가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받아서 결국 상처가 치유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떤 트라우마는 절대로 치유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이 책이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라서 읽기를 꺼려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슬픔 보다는 고통스러운 느낌이다. 주드가 겪은 일은 소름끼치게 무서워서 슬픔이 느껴질 틈이 없었다. 학대 트라우마로 그 이후의 삶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의 주드는 언제든 과거의 나약한 주드로 소환된다. 자기 학대와 처벌의 묘사가 가감 없었다. 작가의 문장은 담담한데도 주인공의 고통과 공포는 서늘하게 체감되었다. ‘한낮의 우울’ 같은 책(물론 매우 유익하게 읽었음)보다 리틀 라이프가 트라우마나 우울증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해되고 와 닿았다.

책을 읽으며, ’그럼에도 결국 사랑으로 극복하였습니다‘라는 결말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 상태라면 나도 절대 결코 포기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책의 결말이 어쩌면 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 문제는 노력하면(?) 바로 잡을 수 있고 고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거란 희망 없이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책을 읽을 때 공포스러운 마음을 이겨내고 끝까지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좋은 것만,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은 이런 미친 폭력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겠다. 또 주위를 살펴서 어떤 폭력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최선을 다해 경고음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도 다짐했다. 그럴때 우리는 서로를 믿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엔 치유의 희망을 얘기 할 수 있겠지!(역자 후기에 언급된 영화 스포트라이트,  줄거리만으로도 안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알기 위해)

이런 사랑, 우정이 가능할까? 윌럼과 해럴드, 앤디 등이 보여준 무한한 지지와 믿음, 응원이 감동적이면서 현실에서 존재할까 싶었다. 내 기준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뿐인데, 끝 없는 돌봄을 제공하며 구속하지 않는 무한 사랑의 경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내가 타인에게 사랑이라고 주는 것들의 양면성을 점검해 봐야겠다.

놀라운 문장들이 많았지만, 대출 전자책으로 보느라 밑줄긋기는 포기했는데, 이건 꼭 적어야해 생각했던 문장들은 다 해럴드의 생각이였다. 아무래도 부모입장에 제일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2부 마지막 장 해럴드가 윌럼에게 쓴 편지같은 글들 중

 

그래서 난 늘 주드 때문에 겁이 났고, 주드가 늘 겁이 났어. 무서워하는 사람과 진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넌 할 수 있어. 하지만 난 여전히 주드가 무섭다. 힘을 가진 사람이 주드고, 난 없으니까. 주드가 죽어버린다면, 자의로 내게서 떠나버린다면, 살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런 생존은 지루한 일일 뿐일 거야. 그러고 나면 난 영원히 설명을 찾아 헤맬 테고, 과거를 이 잡듯이 뒤지며 내 실수를 검사하게 되겠지. 물론 주드가 너무나 그리울 거야. 영원히 떠나버리기 전 그걸 위한 시운전 시도들이 있었지만, 난 그 상황들을 다루는 데 결코 더 능숙해지지 않았고, 절대로 거기 익숙해질 수 없었어.

 


내가 혹시 주드의 예고 된 결말을 놓친게 아닐까 싶어서 2권이 끝나자마자 1권 1부 리스페너드 스트리트를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때 인물구분이 안 되고 미술계 이야기가 많아서 지루했던 부분인데 다시 읽으니  그들의 인생이 더 선명해졌다. 주드를 제외한 3명의 친구는 성인기 초입에서 그들의 미래를 불안해 하지만, 주드는 서른이 되는 날을 고대하고 고대한다. 명확하게 어른이 되면 과거의 문제와 더 멀어질거라고 희망하며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싫어하는 그 이유 때문에 자기는 서른이 되는걸 좋아할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서른은 부정 할 수 없는 어른의 나이였으니까.

 


알수 없는 미래를 향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간 속,  어느 날 찾아온 행운과 행복, 성취가 있었고 좋은 인연과 사랑이 있었다. 중년 무렵엔 네 사람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했다. 드디어 결과물이 그들에게 주어져서 기쁘려는 찰나 인생의 진리가 드러난다. 모든 것은 찰나 한순간이라고. 이제 이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슬픔이 남겨졌다. 소설 속 인물을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며 주드, 윌럼, 맬컴, 제이비 그리고 해럴드, 앤디의 인생이  내 안에서 한동안은 같이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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