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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외계인이 있을까?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의 우주이사를 상상하며
영화나 소설을 통해 외계인에 대한 묘사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외계인은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외계생명체 존재 여부가 지금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 같아서, 현실에선 관심을 갖지 않고 산다. 나는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외계인을 만나러 가야지!라고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받고 외계인을 만나면 전해 줄 선물까지 챙겨서 보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학자들이 화성도시를 건설하거나 말거나 나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확신을 하면서 살아왔고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나는 죽겠거니 막연히 믿어왔다. 책에서 소개한 1970년대 우주과학기술 수준이 매우 높다는걸 알고 아! 화성으로 이주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겠네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류사의 모든 과정은 디아스포라, 그리고 정복과 적응이였으니 인류는 결국 이주 가능한 외계 행성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비행기 타듯 우주선을 타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상상을 해보고 화성까지 가는 6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지? 화성에 가서 지구를 그리워하다가 향수병에 걸릴 나를 생각하니 나는 아무래도 못가겠다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저 미래에 우리의 육체는 소실되고 의식만 AI로 진화되면 다른 행성따윈 필요도 없지 않을까? 
 
우주는 얼마나 넓은가? 우리는 정말 이토록 작은 존재인가?
책에는 별의 시간, 인간의 시간, 하루살이의 시간을 비교하는 내용이 잠깐 나온다. 별의 입장에서 인간의 삶은 마치 우리가 하루살이의 시간을 보는 정도라는 비유였다. 예전에 그런 글귀가 유행했다.(물론 지금도 누구나 하는 소리). ‘나는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인데 너무 열심히 산다’  아등바등 하지 말고 좀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의미로 하는 말인데, 언제나 이 말이 공감이 잘 안 되었다. 우주의  공간과 시간은  나의 공간과 시간이랑 비교 할 수 없이 크지만, 고유의 나란 존재의 상대적 시간이 너무 크고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가 얼마나 넓은 지 인간의 삶이 얼마나 한 순간인지 이런 이야기들을 아무리 들어도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의도적으로 우주를 떠올리고 태양계를 상상하고 그 행성들을 짚어보며 지구를 찾아내어 그 속에 작은 점보다 더 작은 먼지 같은 나의 존재를 인지해보며 아주아주 가벼워지는 상상을 해 보았다.  찰나의 삶에 전전긍긍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어렵다. 내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일지라도 이 삶이 너무 소중해서 자꾸 의미를 찾고 집착하게 된다.

우리가 우주탐험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고 우주를 탐험해야 하는 이유는 내 존재의 기원을 이해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별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기원을 파헤치는 일이다. 공교육과정에서 배우지 않았던 이오니아지역의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알렉산더도서관의 소실된 장서를 그리워하는 칼 세이건의 애통한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부분에서도 공감했다. 나는 과학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지만, 과학적 발견이 나에게 가져다준 혜택과 편의를 생각하며 과학자에 대한 존경심도 들었다. 파레토의 법칙처럼 20프로의 과학자가 80프로의 일반인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각자의 분야가 있는 거겠지! 과학자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 

 책 코스모스를 읽었다고 말하기 위해 읽은 책, 그 외 불편한 부분들
지금까지 읽었던 벽돌책 중에서 가장 부담없이 읽었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나 상상력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여서 그런지 전체적인 내용을 그냥 수용하면서 읽었다. 우리가 왜 과학을 공부하고 우주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책이라고 단순하게 요약할 수 없다. 인간사 전반에 대한 철학적 사유도 담고 있어서 내가 예상했던 책이랑 매우 달라서 신선하고 좋았다. 이제 "나 코스모스 읽었다"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읽고 나서 뭔가 씁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냉소적이고 관망하는 자세의 인간임을 또 한번 자각하며 내 안의 어떤 열등감 같은게 건드려 진 것 같았다. 사샤 세이건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와 같은 감정인데, 너무 해맑은 사람에게 느껴지는 이질감이나 반항심(?)같은 걸 느꼈다고나 할까! 낙관주의적 측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꾸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내 정서를 좀 챙겨봐야겠다.
 
칼 세이건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시절의 과학자들이 별을 연구했지만 노예제엔 무관심했다고 한계를 지적했고 중세 암흑기 동안 과학의 단절을 안타까워했다. 약 천 년 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과학의 시대는 예찬하며 이제 힘을 합쳐 함께 우주탐험에 나서자고 제안한다. 신대륙발견과 과학적 발견이 가져온 제국주의로 인해 지금까지 고착화된 세계지리, 경제, 정치 질서에서 오는 세계 불균형 문제와 폐단은 싹 덮어두고 우리 이제 싸우지 말고 힘을 합쳐서 외계생명체를 만나러 가자는 주장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고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뿐이지만, 근대 역사의 흐름은 동양인의 시점에서 볼 때마다 자꾸만 피해의식이 건드려진다. 
 
인간이 달에 발자국을 찍는 장면은 경이롭게 보이고 인류의 엄청난 도약이지만, 사실 이것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간의 우주개발경쟁의 산물임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냉전시대는 옛날에 지나갔지만 여전히 국가간 장벽이 선명해지는 세상에서 우리 이제 그만 싸우고 지구촌 다 같이 협력해서(돈을 여기에 쏟아부어서) 우주탐험을 떠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내가 각자도생의 신냉전체제 같은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1980년에 출간된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2004년, 내가 읽은 시점은 2025년 그 시차에서 얼마나 많은 과학적 발견이 더 있었을지를 생각했다. 결국 저 우주개발 분야에서도 콜럼버스와 같은 선구자와 그 무리들이 많은 것을 미리 선점하겠구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선구자를 뒤따라 모든 나라들이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주로 많은 것들을 쏘아올리고 있다. 넓고 넓은 우주에  쌓이는 우주발사체 쓰레기더미들도 생각했다. 인간들은 이렇게 자기 이익을 위해 무한경쟁 속에 있는데 저 멀리 외계문명은 우리에게 환대를 제공할거라고 믿는 순수함이 나는 당황스러웠다(칼 세이건은 이 부분을 우리의 후진성이라고 말했다)

6월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도 읽기로 했는데, 저 넓은 우주와 유한한 내 삶, 우주적 상상력이 넘쳐나는 과학자와 안분지족이 삶의 화두인 나의 인생, 이 엄청난 괴리에서 얼마나 허덕이게 될지 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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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60쪽>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음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예상했던 책이 아니라 어리둥절 하면서 읽는 중, 우주얘기로 바로 진입하는 과학책 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우 인문학적이고 나아가서는 서정적인 느낌도 든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될 것 같다.

2. 우주 생명의 푸가
<66쪽>
지구가 생명의 발생과 서식에 있어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우연이며 지구인들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감탄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듣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감탄성 주장이 부분적으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지구의 자연 환경이 인류에게 훌륭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생물들이 지상에서 태어나서 바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진화하고 적응해서 살아남은 물질들은 또한 자기네 환경을 극찬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87쪽>
나무는 햇빛을 생존의 동력으로 삼는 아름답고 위대한 기계이다. 땅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자신에게 필요한 음식물을 합성할 줄 안다. … 우리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호흡으로 혈액 속에 불러들인 산소와 결합시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 뱉는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환상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 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 대 기공의 인공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순환 작용의 원동력이 무려 1억 5000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태양에서 오는 빛이라니! 자연이 이루는 협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앞으로 나무를 볼때, 식물을 먹을 때마다 식물과 동물(나)의 인공호흡을 떠올릴 것 같다. 태양신의 위대함도!

<103쪽>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역사학에 예견론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양쪽 모두 같다.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껏 지구라는 작은 세상이 들려주는 생명의 음악만 들어 왔다. 이것은 우주를 가득 채운 생명들이 연주하는 푸가의 한 성부만을 들어 온 셈이다. 자 이제 저 웅장한 우주 생명의 푸가의 남은 성부들에 귀를 기울여 보자.

3.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117쪽>
모든 국기 중 거의 절반 정도에 천문학적 상징물이 들어 있는 셈이다.  … 저마다 하늘의 힘과 영원무변함음 현 국가 체제에 빗대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은 코스모스에 연줄을 대고자 안달은 하며 산다. … 인간과 코스모스의 관계는 물질의 기원을 통한 관계이다. 그것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지구, 인류의 진화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걸린 지극히 심오한 연줄 인 것이다.
📝주변에 해와 달과 별에 관한 상징물이 이렇게 널려있었는데, 어떻게 한번도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없었을까?  케플러와 뉴턴 같은 천재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을 읽으며 역시 천재는 남다르군… (케플러가 이렇게 오래전 사람인거 처음 알았음)

4.천국과 지옥
<208쪽>
세상을 통째로 태워 버릴 듯 맹렬한 더위, 모든 것을 뭉개 버릴 듯한 높은 압력, 각종 맹동성 기체, 게다가 사위는 등골 오싹한 붉은 기운을 띠고 있어서 금성은 사랑의 여신이 웃음 짓는 낙원이 아니라 지옥의 상황이 그대로 구현된 저주의 현장이라고 하겠다.
📝샛별이라는 그 이름의 실체, 겉으로 관능적이지만 좀포악한 성격의 비너스에 가까웠구나. 금성을 비너스라고 명명하길 잘했네.

<208쪽>
우리가 금성 표면에서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말랑말랑하게 녹은 제멋대로 생긴 돌멩이들과 그것들이 널려 있는 불모의 벌판뿐이다. 이 거친 불모의 사막에서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부식된 우주선의 잔해들이다. 그 우주선들은 언젠가 먼 행성에서부터 날아온 것일 게다.
📝인간의 지적활동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금성에 보낸 결과, 외기권에도 쓰레기들이 쌓이고 있다. 뒤에 이어지는 인간중심적 자연환경 개발의 문제가 우주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가끔 우리를(지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과 방식들에 가끔 회의적이 된다.

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272쪽>
…화성이 적정 수준으로 지구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마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불과할 것이다.

<273쪽>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된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허무맹랑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기술 발전으로 더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  먹고 살아가고자 대륙을 이동하면서 살아갔던 그 옛날 사람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자 신대륙을 찾아나선 사람들처럼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멸망하기 전에 분명 인간은 어딘가를 찾아 낼 것 만 같다. 그 곳이 지구가 아닌 아예 다른 행성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정말 놀랍다.

6.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325쪽>
보이저 호는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아마 21세기 중반에는 이 태양권 계를 넘어설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다른 항성계에 들어서는 일이 없이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의 공간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갈 것이다. 영원히 방랑할 운명의 우주선이 ‘별의 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엄청난 질량이 묶여 있는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다 돌 때쯤이면 지구에서는 이미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인류의 대항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얼핏 이름만 들어본 정도인 보이저호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고 너무 놀랐다. 칼세이건의 예상대로 40년을 여행하고 결국 태양권계를 넘었다는 2018년 뉴스를 2025년에 찾아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이 기술력이 말이 되는 건가? 70년대에 만든 우주선이 50년 가까이 작동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 먼거리에서 지구까지 통신이 된다니!!
📝보이저호의 레코드 판을 받아줄 외계 생명체를 내 인생에서 보게 되는 날이 과연 올지… 기분이 요상하고 두근두근해서 잠이 안 올 것 같다. 이런걸 이제 알았다니!! 자책도 하고..

7.밤하늘의 등뼈

<362쪽>
역사나 철학 책을 보면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와 아낙사고라스로 이어지는 그래스의 위대한 과학자들을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들”이라고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옛 이오니아 인들의 전통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그리스 사조와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도리어 현대 과학과 더 잘 어울린다.

<370쪽>
피타고라스학파의 큰 오점인 실험을 천시하는 생각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험에 대한 혐오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노예의 정체성은 손을 사용하는 그들의 육체 노동에 있었다. 육체 노동은 바로 노예임을 뜻했다. 한편 과학 실험도 육체 노동이었다.  노예 소유자들은 당연히 육체 노동과 거리를 뒀다.

<374쪽>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코스모스가 설명될 수 있는 실체이고 자연에는 수학적인 근본 얼개가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과학을 하려는 동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입지를 불안하게 할 소지의 사실들이 유포되는 것을 억압하고, 과학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물로 제한하고, 실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주고, 신비주의를 용인하고, 노예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의 위대한 모험심에 큰 좌절감을 안겨 주고, 과학의 발전에도 어쩔 수 없는 퇴보를 불러왔다.

<375쪽>
인류 전체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몇몇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아직도 모호한 태도와 완전히 결별하기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대 사회가 안고 있었던 내재적 모순의 상당 부분을 아직도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386쪽>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한 발짝 한 발짝 무대의 중심에서 멀어질 때마다 강등당하는 인류의 지위를 한탄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슴과 가슴 깊숙한 곳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초점이며 지렛대의 받침목이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아직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여태껏 인류가 멋모르고 부렸던 우주에서의 특권 의식에 먹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던져진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만이 우주에서 지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은하수를 밤하늘의 등뼈나 헤라의 젖줄기라고 생각했던 시대는 지났고 과학의 세계가 왔다. 천동설은 폐기되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길 바라는 자기 중심적 사고에 빠져있다. 그러나 우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 변방의 작은 점 따위로 판명될지라도 용기있게 계속 질문하고 탐구해야 한다는 얘기

8.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397쪽>
공간과 시간은 서로 얽혀 있다. 시간적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공간적으로 멀리 볼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천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시간적으로 그 천체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397쪽>
같은 방 안에서 나와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친구를 바라본다면, 나는 사실 그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1억분의 1초, 즉 100분의 1마이크로초 전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428쪽>
시간과 공간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별, 행성과 같은 세계 또한 우리 인간들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 죽어서 사라진다. 인간 수명이 수십 년 정도인 데 비하여, 태양의 수명은 인간의 수억 배나 된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 살이에 불과하다. …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빛의 속도에 도달하는 우주선이 만들어져서 우주여행을 하고 온다면(속도가 빨리지면 그 공간에서의 시간이 지연 됨) 이미 지구는 사라지고 없을 수 있는데 그 우주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어릴 때 읽던 전래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많았다. 나무꾼이 우연히 어떤 동굴을 발견한다. 거기서 무릉도원(?)급 세계를 만나 잠깐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족들은 없고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자신의 후손들이였다는 얘기, 그 사람은 저 혼란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았까 진지하게 걱정했었다. 이 옛날 이야기에도 이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대성 개념이 들어가 있었네!
📝하루살이가 바라보는 인간의 시간과 우주가 바라보는 인간의 시간도 매우 상대적이다. 또 인간 자체인 내가 바라보는 시간은 절대적 24시간이 아니라 그날그날 늘었다 줄었다하는 매우 상대적 시간이다. 빛의 속도를 체험하지 않아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아주아주 단순하게 내 식대로 해석해 본다.

9.별들의 삶과  죽음

<458쪽>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아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476쪽>
… 당신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검은 구멍이 자전하는 블랙홀이라면(자전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당신은 시공간의 또 다른 점으로 출현 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적으로 모처와 모시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다.

📝태양이나 별의 소멸과정 초신성의 탄성을 좀 지루하게 읽다가 블랙홀 부분에 와서 좀 흥미가 생겼다.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접해서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려리니 더 잘 이해가 되었다.

<478쪽>
은하는 미답의 대륙이다. 그 대륙에서는 규모의 별의 차원이지만 정체의 오묘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과 실체 들이 우리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은하 분야엔 우리가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10. 영원의 벼랑 끝
<496쪽>
우리는 외계 은하들을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로 벌어지는 격렬한 혼돈의 폭력 역시 우주의 한 속성이다. 우주는 자연과 생명의 어머니인 동시에 은하와 별과 문명을 멸망시키는 파괴자이다. 우주는 반드시 자비롭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적의를 품지도 않는다. 우주 앞에서 우리의 생명, 인생, 문명, 역사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이다.

<520쪽>
우리 우주가 영원무궁 팽창하는 우주인지, 아니면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우주인지 누구나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주 물질의 재고를 조사하는 것이 그 한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코스모스의 끝, 영원의 벼랑 끝까지 가 보는 것이다.

<524쪽>
우주의 새로운 구성원이 알려 질 때마다 우주 평균 밀도의 값이 수정돼 왔다…. 우주의 소수 희귀 거류민들의 질량을 모두 알아낸 후에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운명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 우주의 가늠할 수 없는 크기, 빛의 속도라는 단위. 이 모든게 내 머리로 상상이 잘 안된다. 그런데 궁금하다. 우주는 영원무궁 팽창만 할지,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진동할지! 우주의 새로운 구성원을 다 찾는데 걸릴 시간과 벼랑 끝을 찾는 것중 어느 것이 빠를지..

11. 미래로 띄운 편지
<558쪽>
우리는 책을 한 번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은 지 수천년이 된 저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575쪽>
우리보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높은 수준의 문명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보낸 레코드에 기록된 생각과 느낌이 누군가에 의해 해독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알리려는 우리의 노력을 정녕 높이 평가하고 고마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저호에 실린 레코드판 얘기는 읽을 때마다 너무 놀랍다. 저 시대에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저걸 실행하도록 결정해준 책임자도 놀랍다.(먹고 살기 바쁜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걸 어찌 받아들였을까? 당장 살기도 힘든데, 우주인에게 지구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또  그 외계인이 지구에게 호의적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놀랍다. 나는 딱 넷플시리즈 삼체에서 예박사가 저지른 일이 떠올랐는데…

<577쪽>
우주적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지만 우리는 어서 지구를 모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하나의 공동체로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지구상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이룩함으로써 지구 문명도 은하 문명권의 어엿한 구성원이 돼야 할 것이다.
📝 세이건님 사후 30여년…아직 많은 지구인들은 지구 평화도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12 은하 대백과사전

<620~621쪽>
우리가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후진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또는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 우리는 저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외계인의 성간 함대가 우리 하늘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들과 잘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음..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로키같은 존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우리는 정복과 지배의 역사를 배웠으니문명간의 조우는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역사의 여러장면에서 인류애를 실현한 순간들은 아주 잠깐 반짝하고 사라졌을 뿐이니까. 작가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외계인은 왜 아직도 안왔는가? 시끄럽게 외쳐되는 이 지구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텐데? 아무튼, 외계문명과 조우를 하게 되어 은하대백과사전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외울게 너무 많겠네…

13.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659쪽>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거나 있지도 않은 거짓 지식에 의존하려거나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마음속에 그리는 사람은 자신을 미신에 맡겨 헛된 위안을 얻으려는 자이다. 그들은 세상과의 정면 대결을 회피하는 비겁함의 소유자들이다. 진정한 의미의 용기는 자신의 편견이 밖으로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또 찾아낸 결과가 자신의 희망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코스모스의 조직과 구조를 끝까지 탐구하여 그 깊은 신비를 밝혀내려는 이들의 것이다.

<673쪽>
별 내부에서 진행된 연금술이 수소를 태워서 성공적으로 합성한 재가 수소보다 무거운 원소들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이 재가 의식을 갖춘 존재로 둔갑한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많이도 해냈다. 글자를 발명하고 도시를 건설하고 예수로가 과학을 발달시켰으며, 급기야 다른 행성에 별과 우주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들이 150억 년 우주의 역사 안에서 수소 원자가 이룩해 낸 놀라운 업적의 일부다.

<677쪽>
… 만약 우리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파괴한다면 별과 행성의 탐사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 반대의 상황도 물론 가능하다. 행서와 항성의 탐사가 계속될수록 인류 우월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말 것이다. 그 대가로서 우리는 우주적 시야를 갖게 될 것이다. 우주 탐사는 지구에 사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를 죽음과 파괴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 이용해야 한다.

📝이 작은 지구에서 서로 적대적인 군비경쟁을 멈추고 군축으로 나아가는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술과 핵 사용의 모순사이에서 제발 좀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를. 반전이나 탈핵에 대한 입장이 명확한 편이지만 나는 그동안 무슨 실천을 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코스모스를 읽으며 나를 더 잘 관찰한 기분이다. 대체적으로 사건에 냉소적이고 늘 관망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좀 씁쓸했다.
📝역자 후기를 읽다가 우리나라엔 20년이나 늦게 번역서가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나라는 21세기에 와서야 우주 세계에 관심을 가진 것인가? 이걸 기술발전의 간극을 메우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투입되어야 할까. 우주예산을 전세계가 하나로 펀드로 구성하여 단일한 개발을 할 수는 없을텐데(우주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이상), 칼 세이건은 너무 희망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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