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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권

2권의 부제는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이다.




2권을 읽으면서 신화가 왜 이렇게 외설스럽고 근친상간적인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게 바로 태초의 인간의 진실이기 때문임을 사랑의 테마로 설명한다.
이 오래된 이야기들이 가 아직도 읽혀진다니,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센지 다시 한번 느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모든 시리즈의 들어가는 말 부분이였다.
2권 들어가는 말 부분에도 많은 밑줄을 그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어보면 좋을 이유가 잘 나와있다.  
예전의 나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저 멀리 남의 나라 신화를 왜 읽어야 해?"
그 이유를 인류의 범위를 확장해서 풀어내는 문장들에 빠져든다.
 
 
<7쪽~9쪽>
내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 않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우리‘는 조선민족으로서의 ’우리‘라기보다는 인류의 한갈래로서의 ’우리‘에 가깝다. ….
인류의 한 갈래로서의 ’우리‘라고 할때, 그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경험이다. 이 공통된 경험의 굽이굽이에 잠복해 있는 많은 사건, 인류학자들이 ’통과의례‘라고 부르는 일련의 사건들, 이런 사건들을 어떤 일에 견주어가면서 설명하는 이야기, 나는 바로 이것이 바로 신화 중에서도 각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원형 신화‘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공유하는 경험 중 가장 절실한 것, 가장 보편적인 경험이 무엇이겠는가? 죽음의 경험이 그 중 하나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 하지만 사람은 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신 끈질긴 심리적 저항을 시도하는 존재이기도 한다. 사람이 저희들 삶을 이상화해서, 영생불사하는 신들을 상정하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화는 바로 이 영생불사하는 신들과 때가 되면 죽어야 할 팔자를 타고나는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신들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신인들 이야기다.
 
<10쪽>
성과 '잃어버린 반쪽이'에 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저 유명한 농담은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 나온다.

<15쪽>
신화는 도덕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윤리적이지 못할 때가 있다.  신화가 전하는 이야기는 도덕이나 윤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히기 이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어쩌면 도덕과 윤리가 진화한 역사를, 이야기 형식을빌려 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쪽>
결국은 ’덧살‘과 ’살홈‘에 관한 얘기다. 유치한 것이 아니다. 신화를 빙자한 인간의 결정적 진실이다.

<29쪽>
신화는 상징이다. 우리는 이 신화로써 세계의 전모, 인간의 바닥을 흐르는 저 낯선 강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는가?

신화와 상징을 앞에 두고, 옛 사람들 생각은 어땠을까요, 하는 것도 어리석다.
 
제1장.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
매우 놀라운 관계들이 쏟아지는데 정말 재미읽었다. 이러우져서는 안되는 동물과의 사랑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반인반수의 자식이 태어난다. 헤르메스가 공주  페넬로페(또는 암염소)와 낳았다는 염소인간 판, 영어단어 패닉의 어원이기도 하며, 팬플루트의 그 판이라는 이야기와 미노스의 아내인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를 사랑하여 미노타우르스를 낳고, 이 이야기는 또 미궁속으로 이어지고 영웅테세우스와 파시파에의 딸 아리아드네의 사랑이야기로 이어진다.
 
제2장. 사랑해선 안 될 사람
아 여기는 매우 복잡한 가계도가 그려진다. 전처의 아들을 사랑하는 계모, 친오빠를 사랑하는 여동생, 아버지를 사랑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와 동침한 딸, 충격적이지만, 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들이다.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뤼토스와 테세우스의 세번째 부인쯤 되는 파이드라 이야기다.
전처 소생을 사랑하게 된 계모의 파국이야기, 현대에도 계속 재생산되는 흔한 모티브다.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센지 느낀다.
이런건 기억해야지!! 하고 막 외워보는데, 뒤에 이야기 읽으면 앞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잊게된다.
 아프로디테의 애인 아도니스가 에서 아네모네 꽃이 된 이야기는 알고 있던건데도 또 까먹어서 다시 외웠다.
 
<102쪽>
아프로디테는 죽은 아도니스를 불쌍하게 여겨서 아도니스의 피에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르를 뿌려 꽃으로 피어나게 했다.
이 꽃이 바로 '아네모네', 즉 바람만 불면 꽃잎이 날리는 바람꽃이다.
 

제3장 ‘도마뱀을 잡아라’
<104쪽>
아폴론은 도마뱀을 노리는 모습으로 곧잘 그려지거나 새겨진다... 고대 그리스어  '사우로스(도마뱀)'는 남성의 성기, 그 중엥서도 특히 청년의 성기를 뜻했다는 기록이 있다.
..,. 아폴론이 사랑한 소년이나 청년의 이름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아폴론의 가장 유명한 애인은 단연 휘아킨토스다.


📝아폴론이 사랑한 남자들
휘아킨토스(히아신스 꽃),  아들퀴크노스(백조로 변해버림, 영어 시그너스), 퀴파리소스(삼나무, 영어로 사이프리스)

<106쪽>
진실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육안으로는 진실을 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대 신화는 꾸준하게 우리를 가르친다.

<108쪽>
신화는 ‘잃어버린 반쪽이 찾기’가 진화해온 역사의 기록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라’는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115쪽>
소크라테스는 청년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린 시각의 소유자였다. 그는 청소년의 영혼을 조련하여 이상적인 세계로 인도하는 탁월한 기술의 소유자였다. 고대 그리스의 중년 남성들에게 '청소년 사랑하기'는 '이제는 잃어버린, 아름다운 옛 모습 사랑하기',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한 발 더 다가서기'였다. '남색'이라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제4장 레스보스 섬 사람들
<120쪽>
여성의 동성애는 원래 레스보스섬 풍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성애에 탐닉하는 여성들을 레즈비언, 즉 레스보스섬 여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섬은 위대한 여류 시인 사포의 고향이기도 하다.
 
<121쪽>
남성들은 오히려, 인간 본성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여성을 가정의 속박에서 해방ㅇ시키려는 사포의의도를 두려워했다. 남성은 이로써 남성을 지키고자 했다. 사포는 여성 동성애꾼이었다기보다는 최초로 여성 해방 운동을 시도한 고대의 여성 같다.
 
제5장 오이디푸스, '너 자신을 알라'!
<131~132쪽>
'그노티 세아우톤'...'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남긴 사람이 철학자 소크라테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 경구를 화두로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상인방에 새겨져 있는 글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이 경구를 신전 문 상인방에 새기게 한 사람은 철학자 탈레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이디푸스도 이 글을 읽었을 터이다. 너 자신을 알라니.... 너 자신이,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알라는 뜻일까? 인간은 절대로 신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라는 뜻일까? 오이디푸스가 이 문장을 읽었다면 이런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141쪽>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죽음과 함께 저 자신의 죽음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어리석은 왕 ‘인간’의 운명을 저 자신의 운명으로 살게 될 것임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왕이었다.
 
<162쪽>
나는 ‘테세우스 이야기’, ‘이아손 이야기’를 쓰면서 신발의 상징성에 오래 주목한 적이 있다. 이제 프로이트와 키민즈가 주목하고 있는 발의 상징성과, 그 발이 들어가 있는 신발의 상징성 사이에다 우리의 사유를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 신발 밑에는 우리가 마침내 돌아가야 할 대지가 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또 새롭게 읽었다. 소포클레스의 책의 줄거리를 잘 알고 있었고 그리스 비극으로만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가려져서 더 넓은 해석을 못했던 것 같다.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기의 답 ‘인간’,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이 언젠가 죽을 운명인 인간임을 알라는 의미로 해석해보니 탁월하네! 싶었다.  그리고 발의 상징성에 주목한 부분도 여러법 곱씹으며 읽었다. 오이디푸스는 퉁퉁부은 발이라는 의미라고 하니, 이 퉁퉁부은 발은 신발을 끌고(이력) 살아가다가 결국 대지로 돌아가야하는(죽어서 땅으로 가야하는) 인간이다.
 
제6장 엘렉트라, 피로써 피를 씻다.
<176쪽>
자식이 그 어미를 죽이는 이 되물이되엉서는 안 될 패륜 행위는, 어미쪽에 죽어 마땅할 죄가 있고, 신들의 뜻이 명백히 그러했다는 사실로 그 죄가 덜어질 것이긴 하나, 예나 오늘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가멤논을 그의 아내가 죽인다(다른 애인이 있음).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를 죽여 아버지 복수를 대신하는데.. 이 신화의 앞뒤 이야기를 전혀 모른 채 프로이트의 엘렉트라 컴플렉스만 알았다면, 어쩔 뻔 했나 싶다. 신화 속 엘렉트라 이야기는 동성부모에 대한 질투와 이성부모에 대한 애정으로 납작하게 볼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트로이 전쟁을 위한 제사를 지내려고 아가멤논이 사슴 한마리를 잡았고, 이에 노한 아르테미스 여신이 아가멤논의 딸을 제물로 요구했고, 딸은 제물로 희생되고(사실은 사슴으로 변하고) 이에 그런 결정을 한 남편 아가멤논에게 뒤늦은 복수를 하는 엄마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복수는 그  딸 엘렉트라가 그 엄마를 또 죽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패륜이기에 충격적인 이야기이긴 하다.
 
제7장 테레우스, 사타구니로 무덤을 파다.
<208쪽>
프로크네는 더 이상, 감격의 순간을 유예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프로크네는, 자기의 입으로 이 복수가 성취되는 순간을 선언하고 싶은 마음에서 지아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찾는 아이는 여기에 있소. 바로 그대 뱃속에 있소"
 
테레우스는.. 저 자신의 가슴을 찢고, 제 손으로 발라먹은 인간의 살, 제 자식의 살도 토해낼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게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인가? 테레우스는 이제 자식의 무덤이 되어버린 제 육신을 저주하면서 울부짖었다.
 
“테레우스여, 보라. 처제에게 음욕을 품다가 그대 사타구니로 네 자식의 무덤, 네 자신이 무덤을 파지 않았는가?”

📝내가 읽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제일 충격적이였던 테레우스이야기. 남편은 처제를 겁탈하고, 그에 분노한 아내는 아들을 죽여 요리해서 남편에게 먹이는 줄거리 너무 엽기적이고 잔인한 이야기인데, 저 옛날엔 진짜 이런일이 있었을 것도 같았다. 일단 원인 제공한 테레우스가 제일 나쁘다고 내가 도덕적 심판을 내려본들 무의미하겠지만, 신화에 나오는 수 많은 여성 납치와 겁탈의 장면중에 이게 최고로 기분나쁘고 싫었다.


제8장 나르키쏘스, '자기'를 너무 사랑하다.

<223쪽>
나르키쏘스 신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약관화하다. 잃어버린 반쪽이를 자기 자신에게 찾는, 대책 없는 ‘왕자병’, ‘공주병’에 대한 엄중한 질책이다.

9장 코스모스를 위한 카오스
<234쪽>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아킬레우스의 여장은 근원의 경험에 대한 욕구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트로이전쟁에 참전을 피하기 위해 펠레우스와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여장시켜 키웠는데, 연합군의 꾀주머니 오디쎄우스가 방물장수로 변장해서 칼을 집어드는 아킬레우스를 찾아낸 이야기 너무 재밌게 읽었다. 트로이 전쟁을 드문드문 읽으면서 집에 왜 샀는지 모르지만, 소장중인 일리아스를 이제는 읽어 볼 수도 있겠네 생각했다.

<237쪽>
테이레시아스가 인간의 미래를 훤히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양성인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인가? 위대한 인간들에 의한 코스모스(질서)의 확립은 이런 카오스(혼돈)의 경험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뜻인가?

10장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250쪽>퓌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편입되었을뿐, 정확하게 말하면 바빌로니아 신화다.

11장 바이런 위험해요.
<263쪽>
아프로디테는 아름답지만 바로 그 위함한 측면 때문에 기독교에 의해 거의 소독당하다시피 한 여신이다…
아프로디테 신전의 여사제, 즉 히에로둘리(신성한 매춘부들)는 나그네에게 몸을 파는 신전 매춘부들이였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시절의 코린토스는, 사랑의 여신전에서 신전 여사제와 신성한 매춘을 즐길 수 있는 방탕한 사내들의 천국 같은 곳이있다. ‘코린토스로 간다’는 말은 그래서 ‘여사제와 하룻밤을 함께한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 바이런은 코린토스의 속사정을 모르는 척 한것인가? 헤로(아프로디테 신전의 여사제)와 레안드로스의 관계를 정말 몰랐던 것일까?

<276쪽>
처녀의 이름 ‘포모나’는 ‘과실’, ‘베르툼누스’는 ‘계절의 변화’다. 과실(포모나)은 때가 있다. 계절의 변화(베르툼누스)를 알지 못하면 과실은 농익다 못해 썪는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나오는 말>
신화를 알면 파리의 예술품들은 파리 시민들보다 더 수다스러워진다. 
나는 신화는 어릴 때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무수한 신화책들을 읽고 어린이들의 머리가 매우 혼란해지는 사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마련한 카오스(혼란)에서 저희 나름의 코스모스(질서)를 길어올리는 순서.... 나는 이것을 '창조적 신화 읽기' 순서라고 부른다.
 
📝어릴 때 읽고, 내 머릿속이 혼란해지는 그 사태를 내가 경험한 바 있는데, 나는 이제서야 겨우겨우 그게, 그리고 지금도 카오스구나!라고 깨달을 뿐이다. 이제 나 나름의 코스모스를 길어올려야겠지? 아이들에게 그리스로마신화 읽으라고 강요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가 30년 걸린거 나의 안내로 아이들은 더 단축할 수 있을 거란 기대(내 욕망)에 내 카오스가 더 확장될지도 모르겠어서 갈팡질팡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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