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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후유증

아이들 추석 연휴가 끝나도 이틀간의 자율휴업일이라면서 지난 주부터 매우 신나했다. 연휴첫날부터 학교를 몇일이나 안간다면서 정말 신난다고 했다. 나는 또 쓸데없이 걱정이 되어서, 너네 학교가 그렇게 싫어?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냐며 진지한 면담 분위기를 잡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냥 학교 안가는 날이 좋다고 했다. 그래! 나도 회사 안가는 날이 최고로 좋긴 하지! 그렇지만 회사랑 학교는 다르잖니? 너희들이 학교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단 아이들은 심하게 풀어졌다.
무제한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용,
기기들로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티비로는 유튜브시청
순간순간 이대로 방치해도 될것인가 싶어서
너희들의 뇌가 단순자극에만 반응하게 되어
바보가 될까봐 두려워! 잔소리를 고차원적으로 늘어놓기도 했다. 나의 잔소리에 아이들은 각자의 친구와 놀기도 했지만, 긴 연휴내내 제일 많이 한것은 역시나 게임.
(우리집에 잠깐 음식 갖다주러 들린 남동생이 10살짜리 조카의 게임도전에 콧방귀를 끼면서 도전했다가 5번이나 내리지고 짜증내면서 돌아갈 정도로 딸래미까지 게임에 고수가 되었다)

나도 심하게 풀어졌다.
물론 계획은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쌓아놨고.
블로그에 임시저장해 놓은 글을 마무리 시켜보겠다고.
휴일에도 평일의 루틴처럼 운동과 영어공부를 하겠다고다짐했었다. 결론은 대 실패

식단조절 실패
연휴 첫날 먹을게 없어서
아침부터 맥모닝을 배달시켰고.
다음날엔 눈뜨자마자 아웃백으로 아점 먹으러 갔다.
다음날엔 또 피자 배달.. 까페 투어. 그리고 마지막에 양평가서 엄마 음식을 또 많이 먹었다.

시간관리 및 자기계발(?) 실패
그리고 안보던 영화 드라마 몰아보기
한산, 비상선언, 감시자, 해어화, 뺑반, 오션스8, 수리남, 작은아씨들..
이게 도대체 몇시간인가!

한번 보기 시작하니깐 자꾸 어떤 스토리에 빠져들어서
현실을 잊어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내가 잊고 싶은 현실이란게 뭐지?
추석연휴가 끝나간다는 사실인건가?
그래서 하루라도 더 폐인처럼 마구 흐트러져보겠다
하는 후진 보상심리.
또 한편으론 아 회사를 가야되겠다. 집에 있으면 맨날 이렇게 드라마와 영화로 현실도피하면서 살게 뻔해!
연휴 내내 현실적인 나와 몽상가인 내가 마음속에서 수시로 다투고 화해했다.

오늘은 아이들의 자율휴업일이라 나도 휴가를 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쌀을 씻어 밥을 앉혀놓고
어제 양평에서 가져온 꽃을 다시 꽂아보고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모든 태블릿을 치웠다.
(줌수업과 재택근무 때문에 태블릿만 3개가 됨)
태블릿을 숨기는 것은 이제 우리가 다시 정신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라고 아이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아이들에게 숙제를 시키고
나는 커피를 뽑아 노트북을 열었다.
긴 연휴를 보냈으니(푹 퍼졌었으니)
이제 다시 열심히 살자는 다짐을 적으려고 했다.
(최근에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나는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은 영향으로 단순한 일기나 기록이 아닌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임시저장 글을 펼쳤다가 갑자기 업무 때문에 회의실 예약해야한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회의실을 예약했고,
무심코 업무메일을 열었다가 메일 폭탄에 화들짝 놀라서
얼른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오늘의 내 휴가를 저 귀찮은 업무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짜피 당장 내가 해결 할 수도 없고
내일 출근해서 고민하면 될 사소한 건이였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릿 속에 들어온 저 업무는 지울수가 없었다. 노트북을 덮고 나서도 내 뇌는 자동으로 저 일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딸이랑 오후에 가기로 했던 백화점을 오전에 다녀왔고
집에 와서 점심도 차려먹고 아들이랑 빨래를 개고
아들을 설득해서 둘레길 산책도 다녀왔다.

이렇게 알찬 월차가 없네 싶게 부지런을 떨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더니
좀 허무하다.

내가 피하고자 했던 현실이 고작 저 일이였나
나는 왜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내 머리는 이미 일을 다 처리했다.
내일 실행만 하면 되도록.
워라밸이고 뭐고 나는 일을 두려워하는가?
그래서 이렇게 미리 대비를 한건가 싶다.

그냥 차라리 오늘도 드라마 정주행이나 할 걸 그랬군
부지런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평일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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