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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고_신화란?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5권을 구매한지 딱 10년만에 읽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는 어려운 지명, 발음하기 벅찬 다양한 신들의 이름, 충격적이고 이해불가인 내용 투성이였다.
매우 혼란스러운 이야기지만 신화 속 이국적인 신의 이름에 큰 매력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30년만에 다시 신화를 읽으면서, 나는 신화의 상징성을 이해하는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더웠던 여름 밤의 독서는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에 버거울 지경이였지만, 이야기가 주는 매력 그 자체로 재밌게 읽었다.
 
독서리뷰를 적으려고 보니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찌 다 담을지 난감했다.
먼저 오랜 시간을 들여 각 권의 줄거리를  정리하고나서야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현대에도 그리스로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 신화에 담긴 상징과 진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을 읽으면  "저 멀리 남의 나라 신화를 왜 읽어야 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우리가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류의 범위를 확장해서 설명해준다.
신화 속 여러 인물의 삶에는 인류의 원형이 담겨 현대에도 반복되는 같은 인생의 문제의 의미와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2권 <7쪽~9쪽>
내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 않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우리‘는 조선민족으로서의 ’우리‘라기보다는 인류의 한갈래로서의 ’우리‘에 가깝다. ….
인류의 한 갈래로서의 ’우리‘라고 할때, 그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경험이다. 이 공통된 경험의 굽이굽이에 잠복해 있는 많은 사건, 인류학자들이 ’통과의례‘라고 부르는 일련의 사건들, 이런 사건들을 어떤 일에 견주어가면서 설명하는 이야기, 나는 바로 이것이 바로 신화 중에서도 각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원형 신화‘라고 생각한다.

 

신화는 결국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2권 <19쪽>
결국은 ’덧살‘과 ’살홈‘에 관한 얘기다. 유치한 것이 아니다. 신화를 빙자한 인간의 결정적 진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신화가 왜 이렇게 외설스럽고 근친상간적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태초의 인간의 진실은 이랬을 것 같다.
초기 인류의 출발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졌으니 그들이 자손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근친상간적이고 자손을 퍼트리는 일이 직설적으로 묘사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여성 납치와 강간이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여성은 아름답거나 어리석게 묘사되는 부분엔 반감이 들었다. 현대의 윤리적 잣대로는 엄청난 범죄지만, 도덕이 발달하기 이전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심리적 거리를 두어야지 읽어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신화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4권은 헤라클레스를  5권은 이아손을 담았다. 영웅신화는 흔히 인간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4권과 5권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지면서 낯선 지명과 인물이 쏟아져서 내가 고통받으며 읽기도 했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 12가지 과업을 이룬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되는데?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얻은 후 어떻게 되는데? 결말을 위해 쉼 없이 읽어나가다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영웅의 고난은 죽어야 끝난 다는 것과 그 고행길 자체가 자유로운 영웅의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4권<357쪽> 열두 과업을 치르면서 쌓이고 싸인 노독도 풀었으니 헤라클레스는 행복했겠다. 평화로웠겠다. 아니다. 그게 그렇지 않다. 신인이나 영웅은, 죽지 않는 한 쉬지 못한다. 신들이 못 다 부린 조화의 충동은 이들에게 피와 땀이 마르는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5권 <32쪽>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  시작 없이, 모험 없이 손에 들어오는 ‘금양모피’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험악할 수 있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강은 물살이 거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바다도 늘 잔잔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신화적인 영웅들의 어깨에 무등을 타면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다. 내가 영웅 신화를 쓰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신화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화에서 제우스는 바람둥이 일 수 밖에 없다. 또 영웅들도 많은 여자를 만날 수 밖에 없다.
제우스 또는 영웅들과 아이를 낳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최고의 신이나 영웅이 자기 국가나 민족의 혈통으로 연결되기 바란 인간의 소망을 반영한 이야기다.
그래서 신화는 강인한 신과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믿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 였다.
이것을 "너는 신이 아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알아라"라고 해석한 아래의 글을 오랫동안 되새겼다.
우리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임을 누군들 모르겠냐만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걸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2권 <131~132쪽>
'그노티 세아우톤'...'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남긴 사람이 철학자 소크라테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 경구를 화두로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상인방에 새겨져 있는 글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이 경구를 신전 문 상인방에 새기게 한 사람은 철학자 탈레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이디푸스도 이 글을 읽었을 터이다. 너 자신을 알라니.... 너 자신이,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알라는 뜻일까? 인간은 절대로 신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라는 뜻일까? 오이디푸스가 이 문장을 읽었다면 이런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신화는 힘이 세다.
이 오래된 이야기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으니, 그리스로마 신화는 필수교양도서 인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벌을 내리는 막장 신과, 오만한 인간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 덕분인가? 생각해본다.
 

3권< 277쪽>
오비디우스를 보라. 자신이 한 일은 제우스의 분노도 소멸시킬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지 않는가? 명성을 통하여 영생불사를 얻었으니 영원히 살 것이라지 않는가?  ‘영원히’까지는 모르겠지만 2천 년 전에 그가 쓴 책을 우리가 이렇게 읽고 있으니, 신화는 참 힘이 세다 싶다.



신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을 알지 못하면, 파리 공원의 조각상은 그냥 돌덩어리로 보인다고 한다. 수 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에서 신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 먼땅 그리스의 옛날 옛적 신들의 이름은 우리나라 브랜드나 건물의 이름에서  흔하게 보이는데, 신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외래어로 들릴 뿐이다.

<5권 맺음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윤기가 알게 된 것을 우리도 알 수 있게끔 도와주는 통로였다. 왜?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니까. 세상의 수 많은 상징을 잉태한 신화를 알면 세상이 보이고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간을 알면 인간이 보이고 그 속에 있는 내가 보인다. 보이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애정이 생긴다.

 

덧, 이번에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으면서 의미가 좋은 신화속 주인공의 이름을 찾아서 별명으로 삼아봐야지 마음먹었는데, 아무리 읽어도 마음에 쏙드는 인물이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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