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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언어가 삶이 될때


독서모임에서 읽게 된 책이고 원래도 에세이류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아서
순식간에 쫙 재밌게 읽었다.
내가 어영부영 놀면서 보내버린 20대를 이렇게도 성실하게 살아내다니 너무 멋지다!
수필인데 본문에 인용표시와 마지막장에 참고문헌 목록까지 따로 있어서 논문 읽는 기분이 들었고
내가 지식을 쌓고 있구나! 싶었다.
내가 앞으로 영어를 어떻게 바라봐야겠다는 나름의 결심도 하게 되었다.

전자책으로 읽다보면 책의 물성없음에 책 제목을 정확히 기억못하게 된다.
다시 한번 책 제목을 되새겨본다.
'언어가 삶이 될 때'
아! 제목대로 내용이 그랬구나! 이제서야 깨달으며
책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본다.

'세계화의 끝과 끝에서' 책의 앞 두 챕터 읽으면서 아 맞다! 나도 그런 편견이 있었지 했다. 그래서 떠오른 기억.
첫째가 초등 입학하자마자 생긴 엄마모임에서 남자아이들만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10명이 모여졌고
10명이니깐 이렇게 저렇게 끼리끼리 또 따로 더 친해지기도 하고 그랬다. 그 중 워킹맘이 두명뿐이였고
한명이 나, 다른 한명은 나보다 5살 어린 베트남에서 온 친구였다.
(베트남출신이지만 이미 국적도 한국 한국식 이름, 그리고 베트남어 통역사로 유능한 워킹맘이였다)
자연스럽게 나랑 친해졌다. 나를 따르기도 했고 내가 챙기기도 했던 것 같다.
다른 엄마들과는 거의 연락을 안(못)하지만 지금도 이 친구와는 언니 동생사이로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는 왜 나랑 놀아줘요? 다른 엄마들은 나랑 거리두는데?"
그 말에 나는 당황했지만, "oo엄마가 나랑 놀아주는 거잖아. 나도 친한 엄마도 없고.."
하면서 웃고 넘겼는데, 그 이후로 그 친구랑 만나는게 좀 어색해졌다.

다른 엄마들이 은근히 다문화 가정을 무시하는 듯 얘기할 때 나도 외면하면서 듣고 있었다.
나는 왜 다른 엄마들은 안 챙기는 저 친구를 챙겨주면서 지내는 건가 싶었다.
(아이 키우는 고충 상담자해주며, 멋진 일을 하고 있는 능력자라고 폭풍 칭찬해 줌)
따로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내가 스스로 착한 척 약자 돕는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기도 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언제든 편하게 커피 마실 수 있는 사이긴 하지만
모든 편견을 극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에 '세계화는 끝과 끝에서 2' 마지막에 이런 편견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국경 하나만 넘으면 이 친구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구나. 이 친구가 갖고 있는 정체성, 언어자원, 문화 자본이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지구본에 그어진 선을 조금만 넘으면 존재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한국의 틀에만 갇혀서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이주, 디아스포라, 코스모폴리타니즘 등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개념이 눈앞에 뚜벅뚜벅 살아나왔다.
좁게 그어진 '우리'의 선 안에서만 살면 편할지도 모른다. '우리'와 다른 이들을 '그들'이라는 딱지를 붙여 구분해 놓고 다른 위치에 몰아넣으면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아니, 보인다 해도 불쌍한 사람, 동정을 베풀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동정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생각이 좁아지는 건 나였지 상대가 아니었다. 선을 긋다 보면 좁아지는 건 나의 세계일 뿐이었다.

매우 뜨끔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우리 아들은 지금도 저 친구의 아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므로 나도 계속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이민자 여성으로서 미국과 일본에서 적응하며 사는 얘기를 읽으며
동시에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의 주제가 연결되어 혼자 감상에 빠졌다.
그래서 적어본다.



지금 내 책상에 널부러져 있는 책들, Tae Keller와 이민진작가의 책
한국인의 디아스포라가 꽃이 활짝 펴 책으로 전해진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이런거에 자긍심을 느끼는 한국인이고
저 베트남에서 온 내 친구도 이민자의 삶을 잘 살아내겠지 싶어진다.


Tae keller의 Tae는 작가의 할머니 이름 태임에서 따왔다고
마침 얼마전에 박완서 작가의 미망을 다시 읽었는데 태임이라는 이름에
"어머 이건 운명이네, 내가 이 책 읽을 운명"했다. 아들이 보던 책 조금 읽다가 원서로 주문해서 읽고 있는데
책에 Halmoni가 엄청 등장하는데 이 할머니란 단어가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단어였나?!
Halmoni halmoni 발음하면서 보는 중.

'백만 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중간쯤 읽었는데, 재밌다. 재밌는데,,,종이책 잡고 읽는게 힘들어서
오래 걸릴 예정인 책, 2권까지 사놓고 방치중이다. 전자책으로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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