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나는 싸울 때 마다 투명해진다'를 연속으로 읽고 바로 읽은 책인데 세권 다 정말 좋았다.
작가가 되어 밥벌이 할 재능이나 욕망 따윈 없지만 내 삶을 구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런 에세이 책을 좋아한다.
작가의 일상이 글을 통한 사유로 풀어지는 책(책에 대한 책?)
챕터마다 인용 문장이 있고 그걸 주제로 글을 써서
책 제목 그대로 쓰기의 말들이 된다.
나에게 와 닿은 쓰기의 말들
내 마음과 상황같네! 했던 부분을 정리해 본다.
(전자책이라 쪽 표시 없이 챕터 제목 표시함)
프롤로그 중에서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간을 상품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통한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되어 수업에 왔다는 어느 학인의 자기소개가 귓전을 울린다. 이 책이 그들의 존재 변신을 도울 수 있을까.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쓰기의 말들이' 글쓰기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진입로가 되어 주길, 그리고 각자의 글이 출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008.
아주 서서히 글을 쓰는 목소리를 찾아냈다. 지적이고 공정하며 이성적인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것이었다.(트레이시 키더)
난 육아 문제에 취약했다. 나 좋은 대로 사는 건 내 선택과 책임인데 아이에게는 늘 뭔가 미안했다. 남들처럼 학원을 보내지도 않고 숙제를 봐 주지 못해 불안했다. .. 나태한 성적이 빈곤한 미래를 예비할까, 걱정에서 걱정으로 뒤척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가 긴가 헷갈렸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글로 쓴 구체적 일상, 내밀한 고백, 치열한 물음을 읽고 말하고 곱씹으며 나도 모르게 불안증이 가셨다. 성적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아서 안도한다는 게 아니라, 삶은 성적이나 취직 같은 한두가지 변수로 좋아지거나 나빠질 만큼 단순하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것, 부단한 사건의 이행과정이지 고정된 문서의 취득수집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보통으로 적당히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학교생활이, 경쟁이, 입시가 꽤나 힘들었다.
우리 아이들을 지금 내가 갖춘 정도로만 키워내려면 내가 했던 노력보다 훨씬 많이 애써야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겨우 나 정도로 살게 만들려고 그 힘든 길로 떠밀어 넣고 닥달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지친다.
적당히 그 현실을 모른척 살고 있지만 불안함에 밤잠을 설치는 날도 있다.
그 불안증을 가시는 방법으로 나도 읽고 써보리라 다짐한다.
038.
자기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자기만의 운동으로 삼으라.(엘렌 식수)
그러니까 어른에게 글쓰기는 사회적 표정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행위였다.
돈과 나를 맞바꾸는 거래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나'를 만나는 일,
자기의 사회적 표정과 대결하며 본래의 표정을 되찾는 일이 어른의 글 쓰기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어려워 하는 일 '나를 드러내는 일' 본래의 내 표정 그대로를 드러내보는 일을 이제서야 하고 있는 중이다.
073.
논픽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겪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다형적이고 덧없는 경험을 탐구하는 글입니다.(데이비드 실즈)
불안정한 나. 예측 불가능한 나. 그런 내게 일어난 일을 글로 쓰려면 누구나 고민에 빠진다. 여러 갈래의 마음이 다투고 이때의 나와 저때의 나는 다르거늘 글로 쓰면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니 쓰기에 애매하고 쓰고도 찝찝하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 볼까.
흔들리지 않는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모순덩어리인 나에 대한 좌절감이나 비하감을 서서히 놓아버리게 만드는 글이였다.
080.
글쓰기의 거짓 욕망이 다른 욕망, 주체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가리는 것입니다.(롤랑 바르트)
이쯤에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왜 외국어 습득에 도달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나는 왜 꼭 필요치도 않은 외국어를 하려고 했을까. '하나 더'를 욕망했을까. 나를 꾸밀 또 다른 지적 장식물을 원했던 것 같다. 글쓰기도 어학 능력처럼 자기 포장의 항목이 된 세태에서 나는 내 경험을 참조해 글쓰기를 배우러 온 이들에게 말한다. 정말 글쓰기를 원하는지 아닌지, 일단 해봅시다.
어머 이것도 내 얘기네? 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작가님이 영어공부에 대한 지적 허영심을 직면한 고백한 부분이였는데, 이 부분을 읽고나서
난 영어공부 왜 하지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작가님의 표현대로 지적 장식물을 원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공부를 하는 이유로 외국여행을 말한다.
난 여행을 안 좋아하고(이젠 거의 싫어하는 단계) 외국인과 의사소통 할 일 거의 없고.
생계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유를 따라가다 보니 남는 한가지.
'재밌어서!!!!!!!!!!'
이제 재미로 영어를 잡고 있다는 걸 깨닿고 뜬금없이...내가 너무 좋아졌다.
089.
에세이의 결정적 기술은 글쓴이가 자기 노출을 절묘하게 통제하는 데 있다.(웬디 레서)
'과시인가 소통인가' 소설가지자 번역가 이윤기가 글쓰기 전에 묻는다는 그 물음을 나에게도 던져 본다.
내 경험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뻔뻔한 자랑이나 지지한 험담에 머물리는 않는가.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거나 확장시키는 메시지가 있는가... 자기 만족이나 과시를 넘어 타인의 생각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자기 노출은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일찍이 나는 이 물음을 스스로 해 오고 있었다.
내 무의식 저 아래에 있는 인정욕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너무 생생하게 느낀다.
늘 뭔가를 쓰려고 하면 그 부끄러움, 수치심이 몰려왔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렇게 정성껏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답니다'(나 참 자상한 엄마죠?),
'나는 이렇게 자기관리를 하고 있답니다'(나의 부지런함 대견하죠?),
'나는 아름다운 것(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이런 것에 돈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답니다. 나 풍족해 보이죠?)
이런 것들을 쓰면서 내 인정욕구를 대면하고 화들짝 놀라고
순간순간 치미는 수치심으로 엄청난 저항이 있는데
그럼에도 그걸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저걸 넘어서고 나면 자기 만족이나 과시를 넘은 선한 영향력 있는 얘기를 쓸..수도..있겠나?
그게 아니더라도 나를 정말 이해하게 되는 얘기라도 써 볼 수 있겠지 믿으려고 한다.
100.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리베카 솔닛)
비공개는 독자가 없는 글이다. 방에 갇혀 혼자 쓰고 혼자 본다. 끼적이는 기분으로 무엇이든 쏟아 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생각을 치밀하게 밀고나가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다. 나만 보니까. 어떤 사건을 자기 중심적으로 재편하기 쉽다.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까. 자기의 견고한 틀 안에서 안전하다...
글쓰기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이라는 지옥'을 배제해 버린 비밀 글은 '글쓰기의 지복'으로 가는 길도 차단한다.
(은유작가의 다른 책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 리베카 솔닛, 나도 너무 좋아서 가지고 있는 '멀고도 가까운'에 나오는 문장인데, 책에 밑줄 같은 걸 전혀 안 쳤던 5년전의 내가 여기에 줄을 쳐놨네!)
비공개 글에 대한 작가님의 글이 바로 나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비공개 글(일기)을 엄청 많이 써왔다.
사적인 거니까 비공개로 썼다.
내가 뭐든지 써 놓은 이유는 '사건 기억(추억)하기'와 '소화 안되는 감정처리'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내가 쏟아낸 비공개 글을 혼자 읽으면서,
아 나만 이렇게 힘든건 아닐텐데, 공개 해볼까 하는 욕구가 생긴다.
사람들은 대체로 남에게 관심이 없으므로 내가 공개글을 써도 아무도 안 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글을 대충 읽는(?) 사람이 아니므로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비웃는 상상을 한다.
가만히 있으면 드러나지 않을 내 무식함과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정말 어렵다.
작가의 말대로 공개 글쓰기는 정말 번거로운 일이지만,
요즘의 나는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지복으로 가는 길을 가보고 싶어진다.
은유작가님의 책 읽은 영향으로 이어서 읽은 책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과
제목만 너무 잘 알았던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
각각 독후감 쓰고 마무리 못 하고 비공개저장되어 있다.
어느 날 공개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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