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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 사샤 세이건

제목과 추천사를 읽으며, 기대를 한껏 했다.
술술 잘 읽히는 에세이이자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거라고,
그런 내용의 책 일거라고 예상했다.

 

 

 

칼 세이건의 책과 다큐를 보지 않았지만, 천체과학자라는 점, 코스모스라는 책을 썻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딸이 나와 같은 연도에 태어난 것은 몰랐다.
완전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딸이 나랑 동갑이라고?
부모가 너무 대단하신 분이라 사는 동안 나름 애환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책 초반에 칼세이건이 죽었을 때가 1996년도로 나오는데
나의 아빠가 돌아가신게 1994년도였기에, 작가에 대한 나만의 공감대도 생겨서 책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반전!
책을 읽는 내내 난 너무너무 오글거려서 너무 힘들었다.
남편과의 특별한 기념일 만들기,,매주 알파벳송 부르기에서부터 심사가 괜히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고
먹고 살기 바쁜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너무 다르고 깊이가 없는 것 같았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 모두에서 이게 정말일까? 이런 마음 정말이야? 의아했다.
(나는 아빠의 죽음을 아직도 어떤 감정으로 느끼는게 불가능하므로, 그냥 그것은 사건을 뿐)

이 책은 주로 이렇게 전개된다.

"나는 어렸을 때 이랬다. 그런데 찾아보니깐 그런 전통이나 문화는 세계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더라

나는 나의 소중한 것을 계속 지켜나갈거야!"
이런 식으로 세계의 종교와 문화행사가 챕터마다 나열되는데

(그 사례중엔 꼭 일본얘기가 들어간다. 내가 아는 극동은 여기야! 하는 듯이)
자기만의 안전한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신의 행운인지도 알고 있으며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사람처럼 여전히 사랑을 믿고 이 지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저자가 얄미웠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상처로 너무 잘 애도하는 것에도 괜히 심술이 날 지경이였다.

나는 처음에 이게 모두 나의 시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의에 같이 읽었던 사람들의 반응이 나랑 비슷해서 좀 위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지닌 아름다운 면을 내가 놓친 건가? 싶은 생각에 검색을 해보다가
코스모스 요약본에 대한 영상들, 창백한 푸른 점을 보기도 했다.

칼세이건, 앤 드루얀
1934년생, 1949년생. 15살차이에 칼세이건에겐 3번째 결혼
둘이 만났을 시점에선 40대에 막 들어선 남자와 20대 중반의 여자
당시 유부남이던 칼세이건과 다른 사람과 약혼상태의 앤이 서로에게 빠져든 상황!

두번째 부인은 책 코스모스랑 다큐보면 열불 나겠는데?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너무 많이 본, 불륜에 대한 나의 편견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딸 사샤 세이건이 무슨 죄야 싶기도 했다가.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부부이자 부모로 묘사되는게 거슬리기도 했다.


어쨌든! 동지가 지나면 점점 낮이 길어지게 되는 단순한 현상이 경이롭다는 것 까진 인정.
그러나 우주의 시간에서 인류가 태어난지는 고작 몇시간 밖에 안 되었다는데
이토록 작은 존재인 우리가  남녀간의 사랑에 목을 메야 했나?

 

새벽에 이 정도로(사실은 훨씬 더 심하게 썼었지만, 삭제) ....

분노의 후기를 쓰다가 덮어두었다(내 질투심을 대면하면서). 

그리고 그날 특별한 일 2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이 책의 영향도 있는데,  '다달의 의식' 챕터에 나오는 여자친구들 저녁 식사모임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도 예전에 이런 것을 주도적으로 하던 사람이였지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바로 이어서 책 '여자의 독서(김진애 저)'에서 본(아직 책으로 읽지 않은)바베트의 만찬에 대한 얘기도 생각났다.

즉흥적으로 주말에 친구 3명을 집으로 초대를 했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엄청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번째 사건

친구들과 지난 2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웃고 떠들다가,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분의 부고 소식이였다.

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

꼭 사고가 아니더라도 그냥 갑자기 어느 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게 우리 아빠의 죽음이였고, 그로부터 10년 후에 큰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으니까.

 

친구들을 보내고 늦은 밤에 조문을 다녀왔다.

너무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죽음이였지만 평소에 워낙 성품이 훌륭하신 분이라 조문객이 많았다.

거기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 같이 울다가 또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왔다.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이젠 모든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가족이 앞으로 수시로 만나게 될 공포스럽고 막막하고.. 세상이 잠시 멈춰줬으면 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괜찮아진것 같다. 내가 슬퍼할 수 있게 마음 추스릴 수 있게 시간이 멈춰주지 않아도

내 속도에 맞춰서 슬퍼하다가도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냥 삶과 죽음이, 인생이 원래 이렇다는 걸 이제서야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위에 내가 쓴 이 책의 후기를 다시 읽었다.

분명 내가 쓴 건데, 부끄러움이 몰려와 많은 부분을 지워버렸다.

난 이제 사샤 세이건 같은 시선도 갖어보기로 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의미부여하기, 자연현상을 경이롭게 바라보기 등등)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여름이 또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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