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분주한 3월
3월의 이 날씨, 아침 저녁으로 여전히 겨울 같은 체감온도에 자꾸만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새학년 새반 새로운 친구들, 새책, 새노트... 변화와 적응 사이에서 갈팡질팡 외롭고 두려웠던 감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저런 기억으로부터 엄청 멀어졌지만, 아이들의 새학기가 찾아오면 그 학교 적응과정을 내가 온 몸으로 같이 느끼고 있다.
내 이런 걱정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스스로 잘 해내고 있어서 대견하다.
(주로 내 자식걱정은 아들이지만, 의외로 아들은 내 불안함이 무색하게 매우 긍정적이다)
올해 초등 6학년과 3학년의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여전히 모르는게 많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왕좌왕 법석을 떤다.
자가진단 앱, 매일 하는 건데도 순간 깜빡해서 작년에 담임쌤 전화를 2번인가 받았다.
아 뭐 잊어버릴 수도 있지~ 하는 쿨한 성격이 아니라.
선생님이 날 무관심한 엄마라고 비난하겠지. 하며 자책의 시간을 갖는다.
선생님마다 의사소통 앱이 다르고, 핸드폰 번호를 공개 안하는 분도 있고 또 회신번호가 다른 분도 있고
이 적응의 기간이 힘겹다.
몇일 전, 개학하자마자 일주일 원격수업하고 등교한 딸이 배가 아프다면서 집에왔다.
수업시간에도 아파서 보건실에 누워있다가 급식도 못먹고 왔다고 했다.
이런 일이 가끔 있어서 나는 딸이 아프다는 소리에 짜증부터 났다.
(보통 이렇게 아프다고 한 이후엔 집에서 흔한남매 시청하면서 요양하고, 당연히 다른 스케줄을 취소됨)
방과후 수업 안간다고 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해진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극도록 꺼려하는 내 성격에
이런 꾀병(이라고 하면 딸이 서운하겠지만, 병원 갈 정도로 아프진 않다고 해서)때문에
방과후 영어(유일한 사교육)에 빠진다는걸 용납하기 싫었다.
조금 쉬었다가(1시간 가량) 방과후 수업에 가라고 했지만, 딸은 울면서 아프다고 했다.
집에 있던 남편은 딸의 편을 들면서 애가 아프다는데 엄마가 돼서 이해를 못해준다고 타박했다.
결국 난 방과 후 선생님에게 결석한다고 문자를 보냈고, 남편에겐 짜증을 냈다.
퇴근 후에 집에 와보니 딸은 내 눈치만 살폈다.
앞으로는 병원 갈 정도로 아픈 거 아니면 방과 후는 결석하면 안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다음날, 담임선생님과 예정되어 있던 전화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어제가 처음으로 6교시를 한 날이라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 했다고 하셨다.
긴장도가 매우 높은 예민한 아이라 원격수업 때도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느라 힘들어 했는데
학교에서의 긴 수업시간이 긴장되고 힘들었나보다 이해하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딸의 성격과 특성을 자세히 설명드렸다.
(딸의 이번 담임선생님은 아들의 4학년때 담임이셨던 너무너무 좋은 분이심)
선생님께 설명을 하고나서 생각해보니, 어머나! 내가 딸이 아닌 내 어릴 적 얘기를 했네? 싶어졌다.
딸의 이야기를 나와 너무 동일시했나 싶었다.
동일시를 제대로 했다면 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 긴장감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줘야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딸의 복통을 꾀병으로 인식했다
아마도 나는 그 옛날에 내가 꾀병이였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과 꾀병(?)의 역사와 현재진행형 꾀병을 되돌아 봤다.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가끔 회사만 가면 속이 불편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런 증상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심리적 불편감은 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것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2학년 8살인 나는 자주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주로 학교에서 아파서 조퇴를 자주했다.
신기한것은 학교를 벗어나서 집에 가면 크게 아프지 않았다.
아픈거 말고도 나는 평생을 화장실 자주 가는 애로 살았다.
예민했고 그 예민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무서웠는데 정확히 뭐가 무서운지 몰랐다.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막연히 잘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매우 내성적이였다. 친구들을 사귀는 방법을 몰랐다.
먼저 다가서지 못했다. 늘 눈치보는 소심한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은 아저씨였는데, 나에겐 어떤 롤모델이 아니였던 것 같다.
학교를 어떻게 다닌건지 모르지만 초등 2학년은 아마도 많은 수업 결손을 남긴채 끝이 났을 것이다.
중학교3학년때 시험을 앞두고 아픈 적이 있었다.
그냥 배가 아팠는데, 심각하게 아픈 것은 아니였고 그냥 불편한 통증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험을 앞두고 긴장했던것 같다.
그런데 그땐 혹시 맹장인가 싶었고..(내심 맹장이길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
응급실에 갔으나 별 다른 문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시험을 보러갔다.
그때 날 학교에 데려다준 엄마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 힘든 터널이 얼마나 오래 지나야 끝나는지 모르던 나이이였다.
어딘가 남루한 행색의 엄마가 선명히 기억난다.
고등학교때, 특히 3학년때는 내내 배가 아팠다.
그냥 불편한 통증이였다. 집에가면 씻은듯이 낫는..내가 생각해도 내가 꾀병이다 싶었다.
학교에서는 늘 우울했고, 힘들었고 괴로웠다.
그리고 눈이 그렇게 가려웠다.
그냥 단순한 알레르기성이였지만, 그 작은 불편함이 공부에 방해가 되어
수시로 안과에 다녔다.
이제 나는 그냥 이렇게 적당히 살면 되는데, 지금도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린 증상을 겪고 있다.
이제 나는 정확히 안다 내가 진짜로 아프다기 보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증상이라는 것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할때 내가 도망갈 핑계로 이 모든 증상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도망갈곳은 없고, 사실 도망갈 필요도 없다는 걸 내가 알면 된다.
나이를 이렇게 먹어서 상황을 제대로 볼 줄 알게 되어 기쁘다.
나의 예민함을 닮은 딸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성격을 고칠 수 없을 거란걸 너무 잘 알겠다.
크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켜봐주는 것, 꾀병이라고 보지 않고 저 아이의 감정과 감각을 인정해 주는 것
오로지 그것 뿐인데, 나는 그게 어려워서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이만큼이나 써봐야지 아는 엄마라는게 부끄럽다. 그냥 단순하게 마음으로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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