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두고 자아실현 고민
사회생활 16년차인 나는 최근 일년 동안 자기소개서를 3번 썼다.
그리고 모두 서류전형 탈락의 시련을 맛보았다.
가장 최근의 탈락의 쓴 맛은 지난 주 수요일이였다.
사실 탈락을 예상했으면서도 꽤나 충격적이여서 마음을 추스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대체적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주위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 곳이 왜 난 싫은 걸까?
이제는 이직에 대한 내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살펴볼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바로 마주보기 전에 우선 서류탈락으로 상처 입은 내 자존감을 높이고자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자화자찬을 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의 이직의 역사
A회사
나는 지금까지 4번의 회사를 다녀봤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이 네번째 회사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력서를 몇군데 써 봤고 면접을 2곳 정도 봤었다. 그리고 탈락했었고,
그러다가 아주 작은 A라는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대학 졸업 전 1월쯤부터 그 회사를 다녀서 11월에 그만두었는데
그래서 여기서의 경력은 약 11개월쯤된다.
그곳은 내가 원하는 회사가 아니였고, 나는 처음부터 여긴 잠시 스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하반기엔 대학원을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9월엔 대학원을 입학했고 낮엔 회사에 다니고 저녁엔 다시 학생모드가 되었다.
B회사
그러다가 우연히(대학원 동기의 추천으로) B라는 곳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나는 합격을 열망하면서 지원했고 최종 합격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나는 그날짜! 11.17일에 첫 출근을 하게 된다.
B회사는 매우 만족스러운 간판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그곳의 일원이라는 대외적인 평판을 갖게 된게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B는 나에게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줌과 동시에 엄청난 열등감을 주기도 했다.
B에는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고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그사람들과 비교했고 나의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이곳을 대학원 다니는 3년을 포함해서 3년반을 근속했다.
회사에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날에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버텼다.
'나는 대학원생이잖아. 여긴 대학원 다니는 동안 임시로 다니는 곳이야.'
'나는 학위받아서 다른데 갈거야!'
또 반대로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은 날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직장인이야!'
'논문 못써도 돼! 그냥 회사나 다니지 뭐!'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면서 그 시간을 버텼다.
(대학교 다닌 4년보다 대학원 다닌 3년이 학교에 머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진짜로 주경야독을 하던 시절이였다.)
B회사는 내 직장생활의 고향이자 기준이 되는 곳이다.
또 간판의 중요성, 내 열등감의 밑바닥 등을 가르쳐준 곳이기도 한데
난 간판보다 내 열등감 극복이 더 중요했는지 대학원 졸업하자마자 여길 나갈 궁리를 했다.
졸업 후 3군데에 이력서를 썼고 그중 젤 면접 일정이 빨랐던 곳에 합격을 해서
나머지 2군데는 오라는 인터뷰에 가지도 않고 바로 C회사로 이직을 했다.
C회사
C회사는 B에 적응한 나에게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곳이였다.
모든게 B와 비교가 되면서 역시 B가 탁월한 곳이였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렇지만 학위덕분에 나를 전문가(?)대우 해주는 곳이였고 그만큼의 급여와 복지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같은 전공자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 있어 많이 의지도 했고 덕분에 일도 많이 배웠다.
C회사를 5년9개월 다녔는데 여기에서 나는 결혼을 했고, 첫째도 낳고 또 둘째도 낳았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서 돌아왔더니 그 사이 커뮤니티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이직을 해 있었다.
사실 C에서의 우리는 정규직의 신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의에 의해 그만두지 않는다면
평생 직장으로 다닐 수 있는 구조여서 계속 거길 다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또 내 열등감이 건드려지는 이 지점에서 나는 이직을 결심한다.
이직의 방법이 이번엔, 수험공부였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였는데, 결국 이 길뿐인가?
둘째가 돌도 안 될 무렵, 나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평일엔 저녁10시부터 12시까지 집에서 두시간,
주말에 토요일 하루에만 아침9시부터 오후6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다행히 수험기간이 약10개월로 짧았기에
버틸수가 있었다. 주말 하루 공부하면서도 이 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주는게 어떨까? 이러다가 시험에도 떨어지면 지금의 내 시간은 뭐가 되는거지? 어짜피 떨어질거 그냥 맘편히 애들이랑 놀아줄까? 매일 이런 자문자답을 하면서도 도서관엘 갔다.
정말 운이 좋게도(아마 내 평생운을 그때 다 쓴 기분일 정도로) 그 시험에 합격했고 인터뷰도 잘 마쳐서
나는 현재 일하는 D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D회사
처음에 D회사의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얼마나 행복하고 기뻐 했던지!
A B C를 거친 건 모두 D에 가기 위한 과정이였구나!
이제 다른 회사 이직 할 생각하지 말고 D회사에 진짜로 열심히 다녀야지!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내 결심은 D회사에 첫 출근하던 날에 바로 깨지고 만다.
첫날부터 '아! 여긴 아닌 것 같아!!!'
'내가 여길 오려고 그 긴시간을 보낸건가. 힘들게 논문쓰고 경력 쌓고 그리고 다시 공부를 해서?!'
'아 나가야돼! 여긴 나랑 안 맞아!'
그럼에도 나는 6년째 D회사 소속이다.
겨우겨우 처음 2년을 버텼고 또 2년은 휴직으로 버텼고, 이제 다시 2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곳의 조직문화에 적응을 못해서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일년 사이에 3번의 지원서를 썼는데,
(내가 나이 마흔을 앞두고서도 자기소개서를 쓰게 될 줄 정말 몰랐다.)
A~D까지의 경력을 자기소개서에 우겨 넣으면서 난 정말 우수한 경력직 인재라고 포장을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진짜로 내가 너무 탁월한 인재라고 내 글에 스스로가 설득이 되어
이미 머릿 속에서는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 회사들은 나란 인재를 인터뷰에 불러줄 생각이 없고 늘 서류에서 탈락 시켰다.
처음엔 아 여긴 나랑 인연이 없는 곳이야 하고 넘겼는데, 최근에 지원한 회사에서도 서류탈락은 정말 충격적이였다.
나는 지금도 B와 C에 다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 당시에 내 입사조건과 대우로 여전히 만족하면서 B에 16년째 다니는 직원들 또 C에도 10년째 다니는 동료들!
내가 B를 떠날때 여전히 B에 남겨진 사람들은 날 부러워했고, C를 떠날때에도 C에 남은 사람들도 날 부러워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두 곳의 사람들과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지금도 그들은 D에 다니는 나를 부러워하면서
내 이직 열망을 이해 못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E회사에 가더라도 나는 또 만족하지 못하고 F를 찾아 헤맬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그냥 D에 적응하고 잘 다니기만 하면 되는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C에 다니던 시절이
업무능률이나 만족도가 높았던 것도 같다. F회사에 가서 D회사가 더 낫군 하고서 땅을 치고 후회할 지도.
물론 나와 친한 사람들 중에는 B->C->D를 거쳐서 E 또는 F로 가서 E나 F쯤에서 만족(또는 수용,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래서 나에게도 아직 E회사가 아니면 또 F회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공인 영어성적을 올려놔야 하나? 싶고, 더 늦기 전에 다시 시험공부를?)
이직의 마음을 계속 품고 회사에 다니는게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내 자아실현(?)을 포기하자니 그것도 괴롭다.
결국 나는 나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게 분명하다.
일자리가 있고 거기서 버는 돈으로 우리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곳이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아, 이력서를 쓰면서 알게된 사실.
A회사에서 D회사까지의 16년 동안 경력의 공백이 단 하루도 없이
쭉 이어져있다는 것!
중간에 한달, 아니면 일주일이라도 왜 쉴 생각을 안해봤을까!
열심히 살았다고 셀프 칭찬하고 마음 다독이려고 지난 세월 되돌아 보며 쓴 글인데,
여전히 마음이 안 잡히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물음에 대답 할 수가 없다.
(아 그냥! 제발 그냥 살아! 왜 너만 유난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