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아이 키우기
작년에 10살 아이키우기로 내가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변한게 없는 것 같아서 매우 놀라웠다.
나는 내가 그때보다 더 성숙하고 감정 조절 잘 하는 엄마가 됐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거의 똑같다.
아이가 수학을 잘 못하면, 걱정이 되고, 이대로 자라면 초중고 내내 수학때문에
힘들어하겠지. 더 나아가서 좋은 대학에 못가겠지, 그럼 얘는 뭘 하고 살아야 하지?
이런 먼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몰려와서 매번 힘들다.
임작가님이 유튜브에서 이번에 낸 책에서 말하는 공부정서가 나쁜 아이가 딱 우리 아들 얘기다.
이미 한번 나빠진 공부정서를 회복하려면 부모의 도움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포기 할 줄 모르고 계속 우리의 노력(?)으로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까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학창시절을 모범생으로 보냈기때문에 아들의 태도와 학습수준을 이해하기 어렵다.
반항기가 넘치고,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학습부진아이다.
물론 학원을 보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학원 선생님이 화가 나서 우리 애를 때린 적이 있어서 학원도 그만 두게 됐다.
공부를 못 할 수도 있지!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게 내 자식 문제가 될 때면, 도저히 포기가 안된다.
조금만 집중하면 되는 것인데, 학교 숙제만 하려고 해도 이미 서로 기분이 상해버린다.
아들에게 무엇가를 가르칠때 난 일단 매우 긴장부터 한다.
내가 감정적으로 폭발 할 상황이 미리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다 남편이 지도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남편이 너무 한 없이 자상한 아빠이다.
절대로 화내지 않고 수백번씩 같은 설명을 반복해 준다.
심지어 수학교실이라면서 4식구가 다 칠판앞에 모여서 선생님 놀이수학도 한다.
물론 남편도 자신의 노력만큼 못 따라와 주는 아들때문에 너무 힘들어 해서 10번에 한번은 화를 낸다.
남편이 화를 내는 지점은 개념을 이해 못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들의 집중 못하는 태도 때문이다.
그래 너무 하기 싫겠지, 게임이나 하고 싶겠지! 이해를 하면서도 하루에 딱 20분 집중 못하는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다.
최근까지 남편과 아들은 3학년 수학을 다시 했고 이제 4학년 1학기 수학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4학년 2학기 수학 진도를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분수의 뺄셈에서 시련을 만났다.
지난 주에 휴가내고 애들 온라인 수업을 도와주던 남편이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들 수학숙제 시키다가 너무 화가 났다고 진짜 괴롭다면서 우리아들이 진짜 멍청한 것 같다고 욕했다.
평소에 아이들이나 나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는 남편은 한번 화를 내고 나서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버린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감 때문에 매우 괴로워한다.
깊게 가라앉았다가 엄청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치킨을 주문해 놓고 퇴근을 했는데,
딸은 아랫층 친구네 집에 가서 없었고(아마 아빠랑 오빠가 싸우는 거 보고 눈치보다가 도망간 것 같다.)
남편은 안방 침대에 누워있고, 아들은 아빠 옆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아들은 자기 때문에 아빠가 화 난 것을 알고 눈치 보면서 주눅 들어있었다.
난 그냥 훌훌 털고 치킨이나 먹으면서 기분을 풀기를 바랐는데, 남편은 시간이 더 필요했나 보다.
내가 "어서 와서 먹어!"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안먹어!" 소리지르면서 대꾸하고, 그걸 지켜보던 아들은 안절부절했다.
난 눈치보는 아들에게 소리쳤다.
"야! 너 숙제하기 싫어서 난리친거면 앞으로도 부모 눈치보지 말고 계속 난리치면서 살아!"
"그리고 먹을 땐 당당히 먹어!"
"부모 안 무서워하는 애가 왜 눈치는 봐?"
"이렇게 될 거 몰랐어? 니 숙제인데 왜 아빠가 숙제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야지 그때 겨우 하는 거야?"
"너 숙제 안올리면 선생님이 그거 체크하느라 내내 기다리시잖아?"
내가 이렇게 아들을 잡으면 남편이 슬그머니 와서 치킨이나 뜯으면서 기분을 풀 줄 알았지만,
남편은 먹으러 오지 않았고, 나는 더 괜히 화가나서 소리치면서 잔소리했다. "먹지마!! 내가 다 먹을 거야!" 하면서
입에도 안맞는 치킨을 혼자 폭식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
난 아들이 일방적으로 혼났다고 생각했다.
숙제를 안해서 아빠에게 혼났고 그래서 앞으로는 혼나지 않게 스스로 숙제 잘하겠다는 내용으로
반성문을 써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아들은 아빠에게 혼났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아들은 아빠랑 싸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랑 싸움이 되는 일대일 관계라고 생각하는 건가.
부모의 권위따윈 일도 없는 집인 건 맞지만, 우리 아들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니. 놀랍군.
반성문을 읽으면서, 또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이 아이는 자기의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이 아이는 부모를 골탕먹이려는게 아니다.
그냥 숙제가 하기 싫은거지! 그냥 숙제가 하기 싫은 거야!
그걸 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야 하는게 부모의 역할이고
근데 그 부모의 역할이 너무 힘들어서 늘 갈팡질팡 오락가락이다.
남편도 아들의 반성문을 읽고, 반성했고 아들에게 욕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서 잠자기 직전에 평소대로 책을 읽어주었고 편안하게 잠 잘 수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아들 혼내고 골질 한 이유로 남편과 부부싸움 한판 했어야 했지만
이 날은 남편이나 아들, 둘다 너무 이해가 되어서 내가 다 감싸주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은 다시 매우 자상한 아빠가 되어 거실 수학교실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