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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음식

여름 날 2020. 10. 20. 07:09

1. 우리 엄마

엄마는 자꾸만 음식을 만들어서 먹이고 싶어 한다.

음식을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아도 그냥 내 엄마가 맞는데도 

늘 그게 가장 중요한 자기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주말이면, 점심먹으러 와라, 저녁먹으러 와라 전화가 오는데 

나는 그게 너무 귀찮고 싫다. 요즘엔 좀 나아졌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주말 아침 엄마의 

밥 먹으러 오라는 말이 너무 싫다. 

 

엄마 돌아가신 내 친구 말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하라고 하는데

나중에 100프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 하겠지만,

일단 지금 현재는 나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엄마는 늘 음식을 뚝딱 만드셨는데, 그걸 보고 자란 나랑 내 여동생은

엄마를 똑 닮아서 무의식적으로 매우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대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길 기대한다.

마치 엄마라는 존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게 가장 큰 역할인 것 처럼 세뇌된 것 같다.

 

음식한다고 아이들은 알아서 놀게 둔 채(이미 놀아줄 나이가 지나긴 했지만)

혼자 이어폰끼고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요리에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음식은 대충 아무거나 시켜먹고 당장 이어폰 빼고 애들한테 집중해주는게 더 낫지 않아?"

 

그런데, 이미 내면화된 먹거리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이 너무 단단해서 고치기가 어렵다.

 

 

2. 남의 엄마

지난 달 여동생 생일이여서 친정에서 저녁모임이 있었다.

올케가 친정에서 받은 채소가 너무 많다고 박스채들고 와서 나눠줬다.

받아와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뭐가 들었나하고 꺼냈다가 괜히 울컥했다.

 

아마도 올케 엄마의 솜씨겠지싶은 정성스런 포장과 헷갈리지 말라고 글씨를 적어둔 채소꾸러미를

꺼내면서 시집보낸 딸을 둔 엄마 심정이 느껴졌다.

일하는 딸 편하라고 하나하나 먹기 좋게 손질해서 보내신 정성이 느껴졌다.

 

남의 엄마 얘기엔 쉽게 감동하면서 왜 내 엄마한테 그게 안되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k장녀인 우리 올케는 이걸 받고 어떤 심정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