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보바리 부인(플로베르)

여름 날 2020. 8. 20. 06:35

나는 이책을 중학교때 읽긴 했었다.  '여자의 일생', '테스', '주홍글씨' 이런 걸 봤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고서는 도대체 중학교때 이런 걸 힘들게 왜 읽은건가. 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읽었나, 아마도 세계문학을 읽었다는 지적 허영심이 큰 동기가 아니였나 짐작해 본다.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연이어 읽다가 '그 남자네 집'을 다시 읽었는데 거기에 보바리 부인 책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권태로운 신혼생활에 연애감정이라는 돌파구가 생겼는데, 이것이 세상이 말하는 불륜이지만, 그냥 불륜으로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이 이 책을 떠올린다.

 

"친정에 가서 아직 남아 있는 내 서가에서 '보바리 부인'을 뽑아왔다. 이미 읽어서 다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자유부인보다는 고상할 것 같았다. 서양 얘기니까. 문학성, 예술성 같은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양 얘기라는 게 중요했다......

줄거리를 쫓아갈 필요도 없었고, 그럴 만한 끈기도 없었기 때문에 되는 대로 아무데나 펼쳐놓고 몇 페이씩 읽다 말곤 했다. 그리고 내 독법에 스스로 전율했다.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디를 읽어도 마담 보바리, 소녀 적부터 꿈꿔온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을 실제로 인생에서 경험해보고 싶어한 이 겁 없는 여자의, 그늘에서는 까맣고 햇빛을 받으면 푸른색으로 변하는, 마치 연속적으로 겹쳐진 여러층의 색깔로 이루어진 것처럼 생동하던 두 눈이 마치 거미가 그물을 친 것처럼 엷은 막 같은 끈적끈적하고 창백한 기운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참속한 말로를 예비하는 정교하고 치밀한 장치처럼 읽혔다".

 

그 남자네 집의 주인공과 같은 마음으로 나도 보바리 부인의 줄거리를 떠 올려본 적이 있다. 통속적인 드라마를 볼때 거기에 나를 대입해 본다던가. 현실에서는 상상도 안되는 일이지만, 드라마속 멋진 남자주인공과 연애하는 상상같은거 말이다. 타성에 젖은 일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그 옛날 연애감정이 떠올라 괜히 추억이 소중해 보이고 다시 해보고 싶기도 한 그 감정 상태인 날들이 있었다.

 

아주 쉽게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한 여자가 결혼도 하고 딸도 하나 낳았는데, 살다보니 이 남자가 내가 원한 그 남자가 이니였네? 그러다가 권태에 빠지고 불륜하고 물건 사들이느라 파산 지경에 닥치자 결국 독약 먹고 자살한 얘기다. 그리고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남편은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죽고 딸만 남겨지는 비극이다.

 

이미 줄거리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니 이책은 현실도피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철 없어 보이는 마담 보바리가 참 딱하면서도 이런 부류가 세상에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중에 나도 포함이다. 세상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진 채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현재를 제대로 못 사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고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됐다.

 

<책 후반후 두번째 불륜남과도 권태를 느끼는 상황에서의 에마 묘사>

"그러나 뭐라 해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 불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의지했던 모든 것이 차례로 무너지는 건 무슨 일일까? 하지만 만일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면, 열정적이고 품위 있는 성격, 천사와 같은 시인의 마음, 하늘의 마음, 하늘을 향해 애조띤 축혼가를 부르는 청동 하프 같은 마음, 이런 것들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아! 모든 것은 다 틀렸다! 일부러 애 쓰며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거짓이다! 어떠한 미소에도 권태의 하품이 숨겨져 있다".

 

어른들이 늘 얘기하는 "그때가 제일 좋을때야!" "애들 어릴 때가 재밌었지!" 하는 말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 말인지 알것 같으면서도 현재의 일상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지금의 일상이 아닌 어떤 특별한 인생을 원하는 건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삶에 대한 환상과 기대 때문에 현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부족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몸은 도망 못가고 정신적으로는 혼자 저 멀리 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반성했다. 집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늘 혼자 책보기, 집안 일하며 팟캐스트 듣기, 요즘엔 헤드폰 끼고 피아노 연습하기까지 하면서 아이들을 외롭게 한건 아닌가 되돌아봤다. 엄마하고 부를때마다 귀찮다는 내색없이 밝게 대답했던 날이 얼마나 되는가? 아이들이 커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때 늘 혼자서 자기만 즐거운 이기적인 엄마로 기억되지 않도록 지금 순간의 내 삶을 더 열심히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줘야지 다짐했다.  엄마가 된 이후로 모든 책의 감상평에서 엄마로서의 내 정체성이 들어난다. 인생이 풍요로워진거라고 믿자.

 

이 책은 다른 책을  많이 떠올리게도 했다. 부인시리즈 세계문학으로 언급되는 '보바리 부인', '채터리 부인', '댈러웨이 부인이 셋 중에 가장 젤 바보 같은 캐릭터를 뽑자면 당연히 에마 보바리, 가장 진취적인 여성상은 채터리 부인, 가장 자상한 엄마상은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생각들었고, 이중에 재밌는 순서는 채터리>보바리>댈러웨이였다. 그리고 불륜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안나 까레리나도 연상되었는데, 이걸 다시 봐야지 했다가. 다른 읽을 책에 일단 후순위로... 
(생각해보니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 주인공이 헷갈려서 댈러웨이도 다시 봐야겠다)

 

그 남자네 집을 다 읽으면서 바로 보바리 부인을 검색해서 다운을 받아놨다가 다음 책으로 읽었는데 중간에 리더기가 고장났고 새로운 기계 사고 받느라 꽤 오래 걸려서 다 읽은 책이였고 새 리더기로 완독한 첫 책이다. 내가 이번에 읽은 것은 계몽사 출판본인데, 이북에 오타가 너무너무 많았다. 처음엔 혹시 불어 사투리를 이렇게 표현한건가? 싶었는데, 어이 없는 오타가 정말 많았다. 기존 파일을 이북파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인지도 모르겠지만, 오타 때문에 너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