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박완서 작가님 책을 최근에 다시 읽고 있다(택배 잃어버린 속상함을 달래보고자 소설책 읽기에 집중했던 한주였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등 자전적 소설 3편을 급하게 읽어버렸다. 읽으면서 이번엔 꼭 독후감으로 남겨야지 다짐했지만,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을 옮겨보려니 내용은 많아지고 핵심은 없어지고, 이걸 왜 하고 있나? 자문이 들었지만, 일단 마음대로 써보기로 했다.
내가 박완서 작가님과 싱아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였다. 야자시간에 옆에 앉은 친구가 보던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순식간에 책속으로 훅 빨려 들었다. 고등학생때 읽은 싱아는 나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에 대한 책으로 기억된다. 주인공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겪는 시골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한 여러 장면에서 많은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초등학교는 경기도 외곽에서 다니고 중학교부터 서울로 이사와서 겪은 내 경험 때문인 것 같았다. 반면, 책의 후반부나 결말인 625전쟁과 1.4후퇴로 텅빈 서울의 묘사 장면은 전혀 기억에 안 남아 있다.
대학교때 TV프로그램에서 ‘그 많던 싱아..’ 를 소개해서 전국적으로 책 읽기 열풍이 불었을 때 나도 저 책을 샀다(내가 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집에 저 책이 있었다.) 그리고 결혼 전까지 오래도록 취침 전에 읽는 책이었고, 결혼 후에도 분명 저 책을 신혼집으로 가져가서 읽었는데, 지금은 왜 집에 없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아이들이 낙서를 해서 못쓰게 되었나 싶다.
20대 내내 읽은 싱아는 모든 장면이 세세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어떤 점을 특히나 좋아해서 여러번 읽었는지는 꼬집어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이런 경험은 책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일제치하, 625전쟁이라는 시대 상황을 운명으로 만난 작가의 삶에 압도되어, 존경스런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대학교때 다시 싱아를.. 읽으면서 후속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시작으로 ‘나목’, ‘도시의 흉년’, ‘미망’, ‘휘청거리는 오후’, ‘오래된 농담’,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그 남자네 집’ 등등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아무튼 그 중에 제일 많이 읽고 좋아했던 건 ‘싱아’였다.
이번에 다시 읽은 싱아도 여전히 재미가 있었다. 고등학교때 나의 감상평이 지금도 변함없이 같다고 느껴졌다. 여전히 나에게 이책은 유년시절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기억되는 책이다. 내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리움을 알아채 준 여러 문장들이 있었다.
경기도 외곽 작은 시에 살 때 서울에 살던 우리 외가쪽 사촌들은 방학마다 찾아와 오랫동안 같이 놀며 즐거운 방학을 보냈는데, 자꾸 내가 사는 동네를 시골이라고 불러서 왜 여기가 시골이야? 버럭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제는 내 고향을 시골이라고 부르지만, 그때 나는 도시에 사는 사촌들을 많이 부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 또래가 없었고, 한 학년에 한반 밖에 없는 작은 초등학교여서 그런지 나는 그 작은 동네가 너무 답답했었다. 차가 많고 상점이 많은 큰 도시로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 살게 되자, 봄이면 산 속에 분홍 진달래와 하얀 산벚꽃이 피는 장면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한창 옅은 연두빛이 되어 가는 산 나무 속에 분홍과 하얀 색이 드문드문 박힌 그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서울에서 맞은 중학교 1학년때의 첫 봄의 우울한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학에 여전히 거기에 살고 계신 할머니댁에 갔을 땐 이미 모든 꽃이 지고 난 한여름이였는데, 봄을 제대로 못 느끼고 지나간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사춘기 시절 내내 나는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던 그 작은 동네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였다는걸 이번에 싱아를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전쟁통에 무조건 한강을 건너 피난을 가야하는데, 주인공네 가족은 불운의 사고로 피난을 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소설은 끝이 나지만, 다음이야기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이어진다. 언젠가는 개인의 체험을 글로 쓰리라는 것을 예감한 작가의 경험담을 읽고 나면, 지금 내가 사는 현재가 평화시국임이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미친 듯한 환성을 지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웅성대던 들판도 덩달아 환희의 춤을 추었다. 그럴 때 우리는 너울대는 옥수수나무나 피마자나무와 자신을 구별 할 수가 없었다. 환희뿐 아니라 비애도 자연으로부터 왔다. 내가 최초로 맛본 비애의 기억은 앞뒤에 아무런 사건도 없이 외따로인 채 다만 풍경만 있다. .... 다섯 살 때쯤이 아니었을까. 저녁노을이 유난히 새빨갰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의 풍경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그냥 딴 동네 같았다. 정답던 사람도 모닥불을 통해서 보면 낯설 듯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울음을 터트렸다. ...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건 순수한 비애였다.”
“왠지 나는 선생님의 그런 세심한 안배에도 끼지 못하고 늘 가장자리에 처져 있었다. 가장자리에선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잘 보였고, 선생님이 아무리 공평하려고 노력해도 선생님 손이나 치맛자락을 잡을 수 있는 아이는 정해져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중심부의 그런 애들을 입을 헤벌리고 침을 흘릴 정도로 부러워하고 시기도 했지만 닮을 자신은 없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죽었다 살아나도 흉내 못 낼 것 같은 게 있는 법인데 나에겐 그게 집단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내어 유난히 민감한 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건 깨어지기가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 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숨이 넘어간 후에 오히려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복잡하고도 밑도 끝도 없는 절차와 격식으로 닷새 동안의 시간을 밤남없이 지배하던 유해가 떠난 후의 공허함은 많은 뒤치다꺼리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상제들을 어쩔 줄을 모르게 만들었다. 채울 길 없는 공허함은 어린 마음에도 크나큰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