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구원_빅토리아 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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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서점을 둘러보다가 진열대에 놓인 이 예쁜 들풀 그림이 눈에 띄었다. 전시된 책 표지에 홀려서 훑어보다가 바로 샀다. 책 표지의 들풀 그림은 볼 때 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가방에 넣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읽어야지 했으나 진도가 안나갔다. 조금씩 읽어서 겨우 다 읽고 보니 겨울이 되었다.
책에는 작가의 인생 스토리가 드문드문 담겨있지만, 안전추구형인 나의 인생과 너무 달랐고, 좀 지루하게 읽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육아 압박감, 자식으로서의 부담감 그리고 저자의 애도 방식에는 공감했다. 지루한 책도 일단 끝까지 읽은 걸 보면, 나는 이런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계절이 순환하듯 인생도 생로병사의 과정에 사이사이마다 희노애락이 있다는 너무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밑줄긋기
<147쪽>
”엄마, 사람들은 왜 마녀를 무서워해요?“ 아들이 묻는다.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정해야 한다. 물론 아이가 마법을 간직하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믿게 나둘 수는 없다. 마녀, 부적응자, 야생의 여자, 쭈그렁 노파. 이들은 남들과 다른 데다가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고문과 화형을 당했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그 유산을 뼛속에 품고 사는 것이다. 그리 오래전도 아닌 과거에 국가와 교회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고문하고 학살하는 짓을 용인했다. 내가 만약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운명이 내 몫일 수도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다.
<185쪽>
어쩌면 사실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이란 없고, 그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 작고 덧없는 순간만 있는 게 아닐까? 모든 선택은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만, 누구도 처음에는 그 방식을 알 수 없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올 때, 그제야 우리는 탓할 대상을 찾는다. ‘현재는 이렇다’고 말하지 않고, ‘만약 이랬다면’하고 울부짖는다.
<197쪽>
나는 이것이 아마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지고 더는 아프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과정일 뿐임을 그때는 아직 몰랐다.
<200쪽>
오빠가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인생에 진정한 공허를 품게 된 사람들은 조용하다. 그들의 슬픔은 쓰라린 날것이어서 그들은 소리조차 낼 수 없다.
<206쪽>
나는 이렇게 압도된 기분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게는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들의 목숨이 아니라 아들이 누릴 수 없게 된 인생을 애도할 시간, 내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어머니됨의 형태를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어떻게 죽지 않은 아이를 애도한다는 말인가? 어쨌거나 내 아이는 살아남았는걸….
.. 나는 숨는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이가 사랑을 기대하고 내 눈을 보다가 두려움을 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