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계승
결혼 전 나는 본가에서 약 15년 동안 연3회의 전부치기 노동을 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명절에 큰집에 가지 않고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차례는 굳이 우리집에서 또 차렸어야 했나?하고 지금에 와서 의문이 든다.
중학교때부터 쭉 여동생과 둘이서 전을 부쳤다.
나는 모양 만들어서 밀가루 묻혀놓기
여동생은 계란물에 넣어 팬에 부치기
이렇게 분담해서 전을 대량으로 많이 만들었다.
(우리 엄마는 참으로 손이 크셨지)
일을 다 하고 여동생이랑 방에 누워서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도
우리가 굳이 힘들게 전을 왜?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부치는것인가?
의문을 품은 적이 없다.
너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 후 시댁에서 맞이 한 첫 명절엔
아버님과 남편이랑 셋이서 부쳤다.
굳이 안도와주셔도 됐는데, 평생 처음 전 모양 잡아보시는 아버님 때문에 시간이 두배나 걸린 웃겼던 기억이 있고, 그 이후로는 애들이나 보라고 배려해주셔서
시댁에서 뭘 만들어 본 기억이 없다.
결혼 후 나에게 명절이란 시댁에 가서 많이 먹고
친정가서 더 많이 먹는 날이였다.
(우리 엄마는 나랑 여동생이 같이 살 때보다 더 많고 다양한 전을 만들어 놓으셨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엄마 뭘 이렇게 많이 했어~
타박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몇년 명절 모임은 없어지고
엄마가 제사를 없애셨다.
막상 없애고는 시원섭섭해 하는 엄마에게
“엄마 너무 잘했어요. 30년 가까이 제사 지냈으면 충분해요” 하며 위로해드렸다.
그런데!!
명절이 다가올 수록 내안의 요리본능이랄까.
전통문화(?) 계승 욕구랄까.
불쑥 전 부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그랑땡? 아.. 아니야 아니다.. 접자
일이 커진다..
동그랑땡하고 깻잎전??
아 아니지..그건 사서 고생이야.
내안의 명절추억 되새김질 욕구와 귀찮음이 극단으로 대립하다가 결국 재료를 주문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리하여 설 전날 우리집 풍경은 이랬다.
나의 진두지휘하에 딸은 만들고 남편은 부치고
나의 지시와 이행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아름다운 분업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아 행복하다!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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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9단 남편은 역시나 뭐든지 잘하지만
남편 닮아 야무진 우리 딸
혼자 깻잎전 다 만들었다.
명절은 이런 날이란 걸(가족끼리 맛있는 해먹는 날)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우리 먹을 것만 조금 만들려던 계획이 이렇게 큰 판이 될 줄 몰랐다.
(내 의도와 다르게 아이들에게 설날은
세뱃돈 받는 날로 매우 중요한 날이긴 했다.)
추석에도 우리 집의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재료준비 수량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동그랑땡 속재료>
돼지고기 1kg, 소고기 300g, 당근1개, 쪽파, 양파, 표고버섯 적당량
<깻잎전>
깻잎 50장
<표고버섯전>
표고버섯 13개쯤
<육전>
육전용소고기 300g
그외 새우(집에 있던거 적당히), 호박 1개
달걀 22개(놀랍게 많이 썼다)
식용유 1리터(진짜 많이 썼다)
키친타올 한통
추석엔 고추전도 꼭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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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뿌듯해서 사진을 찍어놓고
명절 며느리역할 수행중인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더니(나는 정말 눈치도 없지)
전집에서 전 사온 친구는 이 정도면 30만원어치라며
갖다 팔아보라고 했다.
시댁에서 전부치고 지친 한 친구는
전이라고 하면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다들 나에게 이걸 왜 했어? 공통으로 물었다.
음 하고 싶어서?
역시나 답은 아무도 안시켜서였다.
자발적으로 내가 너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라서
힘든거 하나 없이 보람찬 거였다.
애들에게 절대로 잔소리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전을 부쳐놓고 엄마에게도 칭찬받고자 카톡을 보냈더니
엄마가 남동생네 가족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나의 큰 업적을 보시고는 잠시 주춤했던 음식만들기의 열정이 되살아나신듯, 자기가 명절 전부치기 행사에 참여 못한 걸 아쉬워하면서 추석엔 내가! 결의를 다지시길래
서둘러 말려드렸다.
그냥 이젠 우리가 해놓은거 드셔주세요!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엄마 만들고 싶은거 다 만드세요! 할걸 그랬다.
다음 날엔 전을 싸가지고 시댁에 가서 우리 어머니께 폭풍 칭찬을 받으면서도 또 한번 생각했다.
아이들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폭풍 칭찬해줘야겠다.
마흔이 넘어도 칭찬받으면 너무 좋아서
어머님 추석엔 전은 제가 맡을게요. 말을 할뻔했지만,
일단은 말을 아끼고 왔다.
그 다음날엔 양평에서 여동생네 가족과 만날때도
전을 또 싸가지고 가서 멕였더니 내 여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언니가(냉정하고 이기적인) 이제 늙었나 보다(철들었나 보다) 했다.
나도 음식해서 누군가를 먹일 수 있게 된 게 너무 신기하다. 우리 4식구 먹거리야 당연한거지만 시댁식구 친정식구까지 다 먹일 양까지 만들 수 있을 줄이야!
나 진짜로 늙은 것(철든 것) 같다.
이렇게 설날 전부치기 일화는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지난 금요일
그 날의 이름은 정월대보름!
아직 이 날까지 챙겨보겼다는 욕망은 없는 날이라
난 평온했다.
한살림에서 정월대보름 식재료 광고가 왔기 때문에
정월대보름인걸 알 뿐이였다.
그런데 저녁에 엄마가 오셨다.
나에게 전을 얻어먹은 걸 너무 고맙게 생각한 엄마가
오곡밥과 나물 6종과(시금치, 콩나물, 취나물, 고사리, 말린호박나물, 시래기무침), 식혜, 겉절이를 배달 오셨다!
이제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나는 정월대보름에 나물을 무치고 있을 것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