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

아들의 생일 아침

여름 날 2022. 12. 28. 09:26

남은 휴가를 아들 생일에 쓰기로 했다.
그리고 휴가만 생각하고 아들 생일인건
깜빡 잊어버렸다. 어제 퇴근 길 급하게 마트에서 고기만 샀다.
저녁에 미리 미역국 끓여놓고
불고기 양념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아침에 부지런히 밥 짓고 고기 볶으며
아들 생일 감상에 빠져들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은 가물가물하다
정말 아팠는데, 막상 키우다보면 훨씬훨씬
어려운일이 많아서 그 정도 고통따윈 다 덮어진다.

12년전 오늘
저 내일부터 안나와요. 일주일 쉬고 애 낳으려구요.
이렇게 사무실에 인사하고 신나게 퇴근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부터 진통이 오고(진통인줄 모름)
양수가 터졌는데, 남편은 당직근무날이라 집에 없었다.
다행히 여동생이 밀린 연차 소진겸 우리집에 와서 나랑 같이 자고 있었다. 여동생 깨워서 병원가자고 새벽 5시반쯤
현관문 열고 나왔는데(당시 복도식 아파트였음)
정말 깜짝 놀라게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눈 때문에 아파트 주차장도 이미 난리,
택시도 없고, 일단 큰 길로 나왔더니 버스가 다니길래
버스타고 병원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119를 부를걸 싶지만, 그땐 정말 용감했다.
양수터지고 진통오는 무섭고 당황스런 순간이였는데
나는 그 순간에 정신이 또렷해지고 매우 차분해지면서
내가 할 일이 뭔지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 같다.
이런게 본능인가 싶었다.

출산 전 남편과 미리 상의하기를
엄마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니
우리 둘이서만 병원가서 애 다 낳고
“우리 아들 태어났어요” 짠! 하고 알리자고 했었다.
그러나 병원에 가자마자 동생에게
당장 엄마 좀 불러달라고 했다.
연락받고 달려온 남편은 정말 도움이 하나도 안되어
아침이나 먹고 오라며 보내버렸다.
엄마 손 잡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살짝 눈이 왔다.
요리하면서 주방 창문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다가
또 생각했다. 그날 새벽 6시였으면 완전 깜깜했을텐데
내 기억엔 엄청 밝은 환한 아침이였다.
눈 때문에 환했던걸로 착각했나보다.





아침을 차려놓고 이 흔치 않는 아침 진수성찬을
사진찍고 있었다. (평소엔 수저도 안놓고
김치도 안덜어주고 먹는지 마는지 보지도 못한채
먼저 출근)
오늘은 굳이 사진을 찍는데,
이 모습을 딸이 다 지켜보고 있다.
마치. 엄마! 내 생일에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어!
하는 표정으로. “아들~ 아침 먹자~~”
매우 다정한 말투로 아들을 불렀다.
(오늘 나는 휴가내고 아들 생일상 차린
사랑이 넘치는 엄마역할이니
너는 어서 나와서 즐겁게 먹는 사랑스런 아들역할을 하려무나)

“배 안고픈데? 안먹으면 안돼?”
일찍 일어나 침대에 엎드려 폰질하면서
저런 말을 하는 아들이, 바로 내 아들이지
현실 자각하고, 한번 더 다정한 엄마역할에 충실하고자
불러내어 식탁에 앉게 했다.
이제 아들 입에 미역국 한입만 입에 들어가면
한 그릇 뚝딱 먹을 걸 알기에 조바심 내어 기다린다.
역시! 국물 한번 먹자마자 발동걸리듯 잘 먹는다.
잘 먹는 거 보고 나도 미역국에 밥 말아먹으며
생일날에 왜 미역국 먹는지 애들과 얘기했다.
(딸이랑만 얘기하고 아들이 듣게 했다가 더 정확하겠다) 니가 내 미역국을 맛있게 먹어줄것인가 이런 사소한 걸로도 첫째 심기 불편할까 눈치보는 내 마음을 마주했다.
날 키우면서 내 눈치봤을(배려했을) 엄마가 생각났다.
이제와서 고맙다고 말한다.
우리 아들도 한 40살쯤 되면 알게 되려나!

저녁에 외식갈까? 하고 아들에게 물었더니
“무슨 외식이야. 그냥 집에서 간단히 먹자”
집에서 먹는데 간단히 먹자고?
이 무슨 할아버지 같은 말인가!

싫어! 나도 너 낳느라 고생했다구
오늘은 저녁 밥 안차리고 싶어
외식할거야. 라고 속으로만 외치고 학교 잘 다녀오라며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