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한 감정 바꾸기
나는 집순이다. 집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깨끗하게 제자리에 정돈된 내 살림살이들에게서 많은 에너지(?)와 편안함, 휴식을 느낀다.
그럼에도 꽤 자주 거의 한달에 한번은 집을 떠날 일을 만든다. 그리고 그 날을 기다린다.
막상 집 떠나서 자야하는 그 날이 오면 내가 이걸 왜 간다고 했을까?
예약한 내 자신이 미워진다. 다시는 아무데도 안가야지 집이 이렇게 좋은데
내가 그 돈 주고 왜 외박을 하려는건가!
특히 지난 여름 제주도 4박 일정 이후로 집 떠남에 대한 불편한 기억을 확실히 하기로 다짐했다.
내가 어딘가를 예약하기 전에 여행에서 후회했던 기억을 잊지 않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예약하고 후회를 반복중이다.
마지막 외박은 이주 전이였다. 조카의 돌잔치 초대를 받았고
마침 그 돌잔치 장소가 시내호텔이여서 나는 즉흥적으로 돌잔치 전날 거기서 자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1박 예약을 했다. 아마도 아이들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집에서도 널부러져 있지만
특히 여행에서 맘껏 퍼지는 걸 좋아한다.
호텔침대에 누워 티비채널 돌리기, 침대에 누워 엄마 아빠 옆에 두고도 눈치보지 않고 게임하기,
늦은 시간 수영하고 나서 컵라면먹기 등 이런 것들을 매우 좋아한다.
사실은 내가 팍팍한 루틴에서 벗어나서 퍼지는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기적인 외박을 선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내 계획대로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금요일 하교한 아이들을 데리고 여유롭게 투숙을 한다.
시내의 가을 풍경을 만끽하고 걷다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가족간의 자연스런 대화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늦게 까지 수영을 하고(아들의 수영실력을 감상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편하게 자고 일어나 아주 여유롭게 조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각자 책을 읽는다.
좀 더 쉬다가 늦은 체크 아웃 후에 돌잔치에 가서 또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막상 짐을 싸는 목요일 밤의 나는 짜증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내가 이걸 왜 예약했을까 자책을 했다.
금요일 1박 일정이였고 토요일 낮 돌잔치 계획인데 갑자기 남편이 토요일 아침에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때문이였다.
특히 더 짜증이 났던 이유를 돌아보는데 내 자신이 너무 싫어져서 반성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운전을 안(못)한다는 사실과 운전공포증 극복 못 하고 어린애처럼 징징대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나는 운전을 안해도 되면서도 늘 꿈에서 못하는 운전을 하느라 매우매우 괴로운 꿈을 꾸고 있다.)
머리를 이리 저리 굴려도, 비록 1박일지라도,, 그 짐을 들고 대중교통으로 호텔까지 가긴 싫었다.
또 돌잔치 후에 이 짐들을 챙겨서 애들과 택시타고 집에 오기도 싫었다.
호텔까지 남편이 차를 끌고 갔다가. 다음 날엔 대리운전을 부를까.
아 그건 너무 불편할 것 같고, 오만가지 시나리오를 머리 터지게 고민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사나 싶지만)
결국 남편이 아침에 조식을 먹고 짐을 다 챙겨서 집에 차를 가져다두고 1시간 늦게 출근하는 걸로 조정을 했다.
나는 돌잔치 후에 애들과 지하철을 타거나 택시타고 가면 되니깐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그 이후에나 저녁을 즐겁게 먹고 수영장에서 맘껏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여유로운 조식은 불가능했지만, 남편을 보내고(아침 8시에 이미 남편 출발) 애들과 방에서 무려 4시간을 보냈다.
나는 혼자 독서를 아이들은 각자 게임과 티비를 보면서 잘 지냈고
돌잔치 후엔 택시 타고 편하게 왔다.
나는 꽤 오랜시간 동안 이 호텔 1박의 경험을 되새김질 하며 괴로워했다.
나의 공포심과 불안에 대한 태도를 아주 세심하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먼저 운전공포증이다. 내 운전공포증은 내 주위 누구나 알고 있는 거지만, 그 동안 나는 겨우 이걸 극복 못한다고 내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부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못할 수도 있다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나를 보잘것 없고 무능한 인간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 이제라도 다시 해보지 뭐! 하고 양평 가는 길에운전석에 앉았다가 주차장에서 차만 빼고 바로 남편과 자리를 바꾼 일이 몇번 있었다. 운전을 안하면 생계가 힘든 그런 상황이 와야지 극복 가능하겠다 생각하며 다시 보조석에 마음 편히 앉는 걸로 마무리 되었다.(그냥 포기를 하고 싶은데, 포기가 너무 어렵다)
나의 두번째 공포증은 물공포증인데, 더 정확히는 심박수가 올라가는거에 대한 공포감이다. 수영을 하다가 숨이 차면(곧 숨이 넘어가서 죽을 것 같은 공포) 내 심장이 이걸 못 견딜 것 같은 공포감이 들고 그럼 바로 물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건 아마도 아빠의 사인이 심장마비였기 때문에 오는 내 트라우마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람이 거의 없는 호텔 수영장에서 내 마음대로(남편 표현에 따르면, 매우 허우적 어설픈 자세로) 수영을 하면서 숨이 차도 적응하는 나를 발견했다.(아마도 내 체질을 닮은 아들이 수영을 하는 걸 보고 자극 받았나 봄) 어머 나 물공포증, 심장마비 트라우마 극복할 수 있겠네? 이제 수영 제대로 배워볼수 있겠네 하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나의 공포심과 불안을 마주하고 정확히 이름 붙이고 나서야 다른 것 들이 보였다.
나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를 만나서 지금까지 같이 사는 내내
양보와 배려를 하고 있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 동안 내가 보인 철 없는 태도를 돌아보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이걸 지켜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를 닮을까봐 또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좀 더 무게감 있고 일희일비 하지 않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나고 나면 다 별거 아니라는 말,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란 말,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
이런 뻔한 말들이 내 마음 속에 진정한 진리의 말들로 각인되었던 순간이였다.
변화와 여행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이제 익숙함과 낯섬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보기로 했다.
몇 주 후에 우리는 또 외박을 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숙소 예약을 하면서,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여행 전날 짐을 싸며 사서 고생을 한다고 자책하며 짜증 부릴 나에게
낯선 곳에서 잠을 잘 것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나에게
집 나서는 것 자체가 힘든 나에게 쓴다.
이 모든 것은 너가 선택한 것이니
현재,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라고,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시간을 일분 일초마다 자각하고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들을 바라보라고
우리가 겪는 모든 일 속에 성장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