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게임
평소 내 저녁 루틴은 이렇다.
저녁을 먹고 식세기 시작버튼 누르면, 주방 퇴근.
내 방으로 들어가 한 20분 영어공부를 한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 숙제를 점검한다.(잔소리가 울려퍼짐)
어느 날 저녁시간
나는 방에서 영어책을 보고 있었고
식탁에선 남편이 아이들과 빙고게임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방에 있는 나를 부르며 같이 하자고 조른다.
못들은 척 했더니
엄마이면서 애들이랑 안 놀아준다고
날 비난한다.
열받지만
꿋꿋하게 그날의 분량 채우고
추억의 빙고게임 시작
(중학교때 선생님 없이 자습하던 시간이면 내 짝꿍 그리고 앞에 두 친구랑 매일 했던 게
빙고게임, 야구게임, 초성퀴즈)
1~50까지 숫자로만 하고 있길래. 숫자는 재미없으니
과일이름 나라이름 하자고 했다(아들 글씨 쓰기 연습이 시킬 목적도 있었다.)
남편은 애들이 과일 이름 25개나 모를 거래서, 처음엔 채소도 섞어서 했다.
그래서 과일채소, 동물으로
넷이서 5판쯤 했다.
굳이 이겨보겠다고 기를 쓰고 해서 내가 쭉 일등.
남편은 눈치없이 애들 이겨먹는다고 또 타박.
그래서 나중엔 2대 2 편먹고 하는데
늘 아빠바라기 애들이 둘다 나랑 편 하겠다고 해서
매우 뿌듯하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요즘 저녁마다 빙고게임이 가족전통놀이가
되어간다.
지난 금요일 저녁 2:2로 했던 빙고판
나와 딸 VS 남편과 아들
나라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나와 딸이 이겨서 아들은 기분 나빠지기 시작
그래서 아들빼고 셋이서 개별판으로 과자이름으로 했다가
남편이랑 추억의 과자이름 서로 불러대면서, 서로 늙었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편이 쓴 추억의 과자이름으로 벌집피자가 있었다.
나는 누네띠네, 다이제스트, 사또밥 이런걸 썼다.
딸이 혼자서 다 채운 빙고판을 보다가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오징어라고 쓰고 식빵 같은 걸 그려놨는데, 알고보니 그게 자갈치인데 이름이 기억 안났다고.
오징어톡엔 과자 생긴 대로 긴 막대모양을 그려놨다.
마가렛트는 한번 썼는데, 또 쓸게 없으니 초코마가렛트 한번 더 써놨고.
마지막판은 아들의 흥미유발을 위해 포켓몬 캐릭터이름으로 했고
(포켓몬 말고는 전혀 모르는 이름들, 아이들의 암기력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아들이 이겼다.
딸은 밤새도록 계속 하자고 졸랐지만 다행히 어젠 3판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제 빙고판에 우리 네식구 글씨가 다 있다.
우리끼린 누구 글씨인지 알아보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 초저학년이 쓴 줄 알겠다.
아들에게 글씨 못 쓴다고 구박하지 말아야겠다.
틈틈히 했던 빙고의 흔적 찾아서 저장용으로 첨부해 놓는다.
과일이름, 곤충, 동물, 신비아파트캐릭터
빙고하느라 아이들이 과일 이름중에 특이한거 많이 외웠다.
주로 열대과일들 용과, 두리안, 리치, 구아바, 깔라만시.
(빙고에서 핵심전략인 대각선방향에 남들 안할 것 같은것을 적절히 배치하기 위해)
8월말, 딱 5개월 다닌 아들의 영어학원을 끊었다.
지난 5개월 동안 저녁마다 숙제전쟁으로 아들과 싸우느라 너무 괴로웠다.
돈 쓰고 아들 고문하는 미친 엄마가 되어갔다.
그 놈의 숙제따위로 아들을 머저리 취급하는 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딱 끊었다.
저녁에 시간이 남아 돌아서 4식구 모여서 빙고를 한다.
나는 과연 요즘 정상엄마가 맞는가?
정상엄마는 옛날부터 아니였으니깐 미친 엄마만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