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아이들과 같이 읽은 책
남편의 회사 동료분께서 자녀들이 보던 책을 물려준다고 하셨다.
나는 원래 책은 주로 사서보고 특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이불 근처에도 못 오게하는 편이다.(책벌레를 만나봄)
약 500권쯤 됐는데 그 중에 지경사에서 나온 세계명작이랑 이야기 고전도 있어서
출판된지 좀 된 전집이지만 욕심이 나서 감사히 받았다.
세계명작에서 몇 권을 골라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파브르 곤충기 이런거 읽어주다가 아이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중도 포기했고( 파브르 곤충기는 나도 초등학교때 재미없어서 안 읽었지만 이제는 조금 관심이 생기는 자연관찰 분야, 그러나 내 욕심과 다르게 아이들은 옛날의 나처럼 거부반응 보임)
이번엔 재밌는 이야기가 최고지 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골랐다.
그래서 읽게 된(읽어 주게 된) 책 2권 제인에어와 허생전
1. 제인 에어
나는 제인에어를 중학교 때 읽었는데 내 기억에 그때도 민음사 책처럼 완역본 두께였던 것 같다.
그때 어떤 기분으로 읽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34살쯤에 다시 읽었는데 이게 이렇게나 두꺼운 책이였다는 사실에 놀랐고
놀라운 반전이 2개나 있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매우매우 재미 있었고, 캔디캔디 스토리의 원조는 제인에어였구나! 싶었다.
예쁘거나 무조건 착하지도 않은 주인공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물론 운명처럼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좋아서 나도 딸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 긴 얘기를 초등학생용으로 어떻게 각색했을까?
삽화까지 넣어서 200페이로 어떻게 줄였을까? 궁금해 하면서 읽어 주었다.
초반에 제인이 외숙모집에서 구박받고 기숙학교에서 굶주리는 얘기를 읽어주면서
너희들은 상대적으로 얼마나 행복한거냐 수시로 자각시켜주었지만, 애들한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뿐.
남녀간의 사랑이 싹트는 부분이 대충 뭉뚱그려졌고 아이들이 이걸 이해 할까 싶은 장면들이 몇개 있었지만
그런 거 다 대충 넘기고도 무리 없이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역시나 우리 아이들은 유령이 나타나는 것 같은 으스스한 장면에 열광했다.
(이 부분이 비밀의 화원의 장면과 비슷해서 애들이 기억해 내기도 했다. 배경도 같은 영국이네)
책을 덮으면서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은 겉모습이나 재산을 따지지 않는 거야"
라고 얘기 해 줬지만, 역시 공허한 나의 외침으로 끝남.
지경사 초등용 세계문학 전집엔 내가 좋아하는 안나까레리나. 부활, 레미제라블 다 있지만..
완역본 분량을 생각하면, 안나까레리나, 레미제라블(얘는 무려 총5권)
이렇게 긴걸 삽화 포함 200장으로 어찌 줄인 것일까..
물론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으로 나도 초등때 읽었지만,,
불륜이 난무하는 안나까레리나는 도대체 어떻게 각색되어있을까 매우 궁금하지만,
아이들에게 선듯 읽어줄 마음이 안난다.. 아마도 다음 책은 '사랑의 학교' 나 '사랑의 가족'이 될듯..
2. 허생전
이번에 진짜 재밌는 이야기를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고른 책이였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어려웠던 책이였다.
나는 허생전을 읽어봤다고 착각했다.
수능에 나왔던 것도 같았고
18세기 문학작품으로 주제는 "매점매석" 조선의 경제상황에 대한 풍자" 이렇게 외웠던 것도 같다.
나는 허생전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경제관념이 생기고 매점매석을 이해하게 되겠지!하고 기대했고
이건 경제동화일거야! 생각했다.
매점매석에 대한 얘기는 초반에 잠깐 나올 뿐
이 책 전체에는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 에 대한 박지원의 원대한 이상이 담겨져 있었다.
고미숙작가님의 책을 몇권 읽었기 때문에 박지원의 사상, 품성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용으로 편집된 허생전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토록 멋진 선비라니!
책 내용 후반부엔 당장 북벌을 할게 아니라 20년 30년은 백성들을 편하게 살게 해주고
아주 천천히 부국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면서, 만약 우리가 못 이루게 되면 그걸 우리의 아들들이
또 그 아들의 아들들이 이룩하게 될테니 기다려보자고, 지금은 못 하지만 200년이나 300년후의 후손들이 이룰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글을 200년 후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읽고 있다니! “얘들아 청나라랑 왜나라 사이에서 등터지던 조선이 지금 이렇게 멋진 나라 대한민국이 되었어~~”하며 아이들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읽었지만, 애들은 엄마 왜 저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레미제라블을 읽다보면 중간중간에 작가(빅토르 위고)가 튀어나와서 말 하는 것 같은 장면이 있는데
허생전을 읽으면서도 자꾸 박지원이 나와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빅토르위고 같은 대문호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네 싶었다.
얼핏 빅토르 위고가 엄청 더 오래 전 사람일 것 같지만,
박지원이 빅토르 위고보다 더 빨리 태어나셨다 떠나셨네.
하필 집 책장엔 제인에어 옆이 레미제라블이라 연상작용인지도
여튼 줄거리는 이해했지만, 책에 담긴 큰 뜻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 했다.
이야기 고전에서 다음 책은 여름방학 맞이 납량특집으로 장화홍련으로 정했다. 귀신 나오는 얘기라고 예고해서 아이들이 매우 기대중
3. 어린시절 추억 속의 책
허생전을 읽어주면서 불현듯 너무 생생하게 떠오른 장면
이 나에게 엄청난 연상작용을 불러와서 정리해 본다.
허생전엔 이 단어를 애들이 이해할까 싶은 게 많았다.
‘망건’, ‘소첩’, ‘벼슬아치’ ‘조정’ 등등 옛 단어가 많이 나왔다. 망건을 눈으로 미리 읽으며.. 아 이거 모를텐데..멈칫하는데.
갑자기 내 기억 속에 '이무기'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이 단어를 들은 기억이 소환되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3학년때일 것이다. 초등학교3학년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책 선물을 해주셨는데, 한권은 몽실언니였고 다른 한권은 권정생 선생님과 다른 분들의 단편이 모인 책이였다. 아빠가 밤에 우리들에게 그 책을 읽어주셨는데 어느 단편에선가 산속 연못에 사는 이무기얘기가 나왔다. 아빠에게 이무기가 뭐냐고 물었다. 아빠의 설명을 듣고 뱀인데 마치 용처럼 거대한 그 정체를 상상했다. 구체적인 줄거리는 전혀 기억이 안나지만 이무기라는 단어가 주는 섬득한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 아빠가 읽어주셨던 그 책. 선생님이 나에게 선물하신 그 책이 뭐였을까 싶어서 한동안 틈틈히 ‘권정생’ 으로 검색해서 책을 찾다보다가 포기했다.
그러다가 지금 바로 이 글을 쓰다가 번쩍하고 생각이 났다. “벌렁코 할아버지”
와.. 이게 생각이 나다니, 내 기억 속 저 끄트머리에 있던 그게 떠오르다니!
순식간에 책 표지까지 떠올라서 검색해보니, 내 기억과 일치하는 반가운 책표지.
저 책을 구해서 다시 봐야겠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누런표지의 더 오래된 판본이였다. 책을 빌려서 확인 해 보고 싶다.
내 기억이 정말일까?
저책에 정말 내가 기억하는 그 이무기 이야기가 있을까?
만약 거기에 없다면, 아빠가 읽어주신 그 책은 뭐였을까?
나는 아빠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그 책을 읽어주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많은게 이해되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우리아빠가
자식들과 어떻게 놀아줘야할지 몰랐을 무뚝뚝하고
젊었던 아빠가 이런 마음이였을 것 같았다.
내가 책이라도 읽어주면 애들이 좋아할까?
책을 읽어주면 조금이라도 훌륭한 사람이 될까?
아 애들하고 놀아주는건 힘들어
그냥 내가 읽고 싶은 책이나 읽어보자!
듣고 싶은 애들은 듣겠지!
위에 생각은 모두 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품은 마음이다.
아빠가 정말 딱 지금 내 마음 같을 것 같아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몰려왔다.
내가 책을 읽어주면 집중해서 들어주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딱 그 내 시선이 우리 아빠가 나를 바라보던 그 느낌일것 같은 순간,
낭독하는 자기 목소리를 자기 귀로 들으면서
내 목소리 왜 이래? 하며 자조했을 것 같은 순간.
어머나! 내 안에 우리 아빠있네!!
싶은 순간이 계속 다가와서
밤마다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1년 넘게 코로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태블릿으로 온라인 수업을 듣고
티비로 유튜브를 보다가 스마트폰으로 친구와 카톡을 한다.
나는 이런 시대에
스마트 기기가 없던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굳이..
책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는 걸 꼭 가르쳐주고 싶다.
그래서 매일 밤 읽어 주기를 지속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그저 재미있게 들어주면 고맙고
혹시 나처럼 어른이 된지 한참 지난,
어느 날 불현듯이 아 맞아 우리 엄마가 밤마다 읽어 줬던 그 책들 정말 재밌었어 하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조금은 풍성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