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보내며 얻은 취미생활
나는 봄을 싫어했다.
처음엔 학창시절의 새학기 기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를 졸업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초봄의 쌀쌀한 날씨와 분주한 마음이 좀 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시작되고나니
나의 봄 앓이는 새롭게 되풀이 되는 기분이였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꽤 길게 혼자 있는 시간을 갖으며
코로나 덕에 오랫동안 집에 머무르며,
또 마침 한달 사이에 3번이나 장례식장을 다녀오는 일을 맞이하면서야 깨달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맞이한 그 봄의 기억으로 내내
봄을 싫어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로 나에게 생긴 환경적 변화가 너무 급격했다.
낯선 곳으로 이사를 했고, 새로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모든 게 낯설었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고 답답했다.
세상이 이대로 잠시 멈춰서 내가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주길 간절히 바랐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그 많은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때의 내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봄의 꽃샘 추위와 깊게 연결되어버렸다.
지금까지 약 27년을 봄에 꽃이 피고 나무에 연두빛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즐기지 못했다.
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란 사실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런 마음 상태로 봄이 왜 이렇게 춥냐고 징징거리며 마음은 바쁜채로 또 봄을 맞이했는데
묵은 내 감정에 대한 자각과 함께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같은 선물을 절대 싫다고 선언을 했었다.
돈 아깝게 시들어 버릴 꽃을 왜 사냐면서 타박했다.
그런데 올해부턴 온 마음을 다해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돈을 주고 나를 위한 꽃을 사본게 처음이였다.
그 시작은 후리지아 한단
쇼핑몰에 갔다가 오천원으로 후리지아를 샀다.
꽃병이 없어서 물컵에 꽂아서 식탁에 올려두니 노란색이 매우 발랄하고 예뻤지만,
향이 매우 진했던 프리지아는 내 취향이 아닌걸로 판명났다.
향기에 머리 아파서 금방 드라이플라워로 변신
그리고 동생네 집에 겨울에 심었던 튤립을 캐다가
우리집 화분에 옮겨 있었더니 집이 따뜻해서 그런지 금새 싹이 돋고 꽃대가 올라오더니
연보라 빛의 튤립이 활짝 피었다.
한동안 바라보면서 매우 매우 행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추웠던 4월의 어느 날 상가에 새로 생긴 꽃집을 발견했다.
만원의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매일 다른 종류의 꽃을 팔고 있었다.
마침 이 날은 한 달 사이에 세번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날이기도 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 나에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조금씩 깨달았던 시기였다.
그 꽃집을 발견한 이후로 난 거의 매주 꽃을 사고 있다.
제일 처음 만난 만원의 행복은 "라넌큘러스"
겹겹이 있는 꽃 잎이 환상적으로 이쁘고, 여러 화려한 색깔에 완전 빠져든다.
처음 꽃을 만지면서 가위질로 다듬고 이리저리 꽂아보는데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마치 애들이 새로 산 장난감 가지고 노는 기분이랄까.
아이들에게 엄마가 꽃 사온 날은 엄마 이거 가지고 놀아야되니까. 엄마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도 했다.
만원으로 사본 라넌을 나눠서 길게 또 짧게 이리저리 꽂아보고
2주일 정도 아주 많이 행복했다.
어느 날의 “만원의 행복 오늘의 꽃”은 버터플라이
꽃집에서는 마구 늘어지게 꽂아 놓은게 이뻤는데
내가 하면 꽃집 언니처럼 안 되고 정신없이 된다며,, 좌절했던 날
매일 이리저리 다시 꽂아보고 한참을 또 가지고 놀았다.
식탁에도 올려두고
책상에도 올려두고
자리 옮겨서 일 할때는 꽃병도 옮겨서
일하면서, 과자 먹으면서, 독서하면서 수시로 꽃 감상하면서 행복한 봄날
그 사이 꽃병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버터플라이는 진짜 오래도록 두고 봤다.
어느 날의 만원의 행복은 “리시안셔스”
그때까지 살아있던 버터플라이와 함께 꽂아주면서
한참을 이리저리 꽂아보면서 가지고 놀고 감상했다.
일할 때, 책 볼때 꽃병 옮겨가면서 옆에 두고
수시로 사진도 찍고 꽃 보면서 매일 힐링, 꽃멍
지난 어버이날 사심 담아 엄마에게 사드린 카네이션
내가 갖고 싶은 꽃이지만 엄마 사드리고 나도 같이 꽃멍
수입카네이션 비싸서 나는 안사지만, 엄마 사드리고
같이 감상하니 행복 두배
우리 엄마는 출퇴근길(엄마집에서 동생집으로)에 매일 꽃병 들고 이동하셨다고 한다.
이 꽃병 저 꽃병에 나눠 꽂아보기하시면서
나랑 똑같이 꽃 가지고 놀기에 한참 즐거워 하셨다.
어느 날의 만원의 행복은 튤립
퇴근 길에 꽃집에 갔더니 오늘의 꽃은 떨어졌다고 해서 처음으로 꽃을 골라봤다.
내 의지대로 고른 "튤립"
튤립 색감에 취하고 연하고 달콤한 튤립 향에 취해서
얘 보면서 한동안 매우 행복했다.
이번주 만원의 행복 “미니 장미”
여전히 일주일 동안 수고한 나를 위해 금요일 마다 퇴근길에 꽃집에 들르고 있다.
난 커피 안 사마시니깐 충분이 이정도 살 만해! 라고 자기 변명을 하는 날도 있지만,
이젠 꽃 집 들러 꽃 사는 일은 일주일에 돈 만원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행복이 되었다.
늦은 시간에 가면 늘 꽃집 사장님이 넉넉하게 주신다.
미니장미에 서비스로 작은 꽃들까지 함께.
내가 골라서 사려고 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색상 조합이지만 꽃집 사장님은 대충 조합해도 멋지게 완성
이젠 내가 이리저리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 꽂는다.
양재든 남대문시장이든 맘만 먹으면 꽃시장에 가서 더 많이 사 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매주 딱 만원 어치 이 만큼으로 만족하려고 노력중이다.
아마 어느날 기분이 내키면 꽃 시장에 가서 한아름 사다가 하루 종일 가지고 놀면서 기뻐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꽃 덕분에 우울했던 봄앓이가 한결 수월해졌다.
지난 봄 내내 너무 추워서 웅크리고 지냈지만, 이제 곧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여름이니 다시 한번 마음을 활짝 펴본다.